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20년 전이다. 1990 이탈리아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한국은 우루과이와 마지막 예선 3차전을 치렀다. 이미 벨기에, 스페인에게 0-2, 1-3로 각각 패배해 예선 탈락이 확정된 한국은 1무 1패의 우루과이를 맞아 월드컵 사상 첫 승리를 올리기 위해 공방전을 펼쳤다.

한국은 다소 밀리기는 했으나 ‘캐논 슛터’ 황보관과 ‘아시아의 야생마’ 김주성의 폭발적인 공격력, 주장 최순호의 절묘한 볼배합으로 우루과이의 파상공세에 맞섰다.

후반 중반 수비수 윤덕여가 골킥을 늦게 찼다는 이유로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한 뒤 10명으로 버틴 한국은 16강 진출을 위해 1승이 절실한 우루과이에게 경기 종료 수분 전 오프사이드성이 짙은 헤딩골을 허용, 0-1으로 패배했다. 한국은 3전 전패를 당했고 우루과이는 기사회생, 16강에 진출했다.

당시 일간지 축구담당 기자였던 필자는 심판의 편파판정에 분개하면서 새벽 ‘한국축구, 4년 후를 기약한다’를 리드로 한 월드컵 기사를 작성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아시아의 1인자로 군림했지만 세계축구의 흐름에서 너무 벗어난 변방국이어서 국제축구연맹(FIFA)에서의 영향력을 기대하기는 언감생심이었다.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전. 한국은 20년 만에 우루과이와 다시 월드컵 무대에서 맞붙었다. 아쉬운 느낌이 또 들었다. 이번에는 편파판정에 억울해서가 아니라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쳐서다. 공격 점유율 54%-46%로 앞섰고 유효슈팅도 많았지만 결과는 1-2로 지고 말았다.

20년 전에도 그랬듯이 한 번 해볼 만한 상대로 여겼던 태극전사들은 경기가 끝난 뒤 폭우가 쏟아지는 그라운드에 누워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한국축구의 위상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1990년대 후반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FIFA 부회장을 맡았고 2002 한·일월드컵에서 사상 초유의 4강 신화를 이뤄낸 한국은 20년 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FIFA 관계자나 유수한 세계축구 언론 관계자들도 이미 한국이 아시아의 수준을 넘어서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도 16강 이상을 넘볼 수 있는 강호임을 지목했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주영(모나코) 이청용(볼튼 원더러스) 기성용(셀틱) 등 ‘멋진 해외파 4인방’이 포워드와 미드필더로 폭발적인 공격력을 과시해 세계 강호들과 겨뤄볼 만한 전력이라는 평가였다.

이번 남아공월드컵 예선에서 첫 상대인 2004년 유럽 선수권대회 우승팀 그리스를 2-0으로 완파했고, 세계 최고의 공격수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맞아서는 이청용이 절묘한 골을 기록했지만 수비 집중력이 흐트러져 1-4로 패배했으나 전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예선 마지막 경기서는 아프리카의 전통적 강호 나이지리아전에서는 먼저 1골을 내주고도 이정수 박주영의 골로 전세를 뒤집었다가 2-2로 무승부, 아르헨티나에 이어 1승 1무 1패로 조 2위로 월드컵 원정경기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오르는 값진 결과를 올렸다.

특히 허정무 감독은 한국인 사령탑으로서 월드컵 첫 승도 함께 올려 한국축구사에 새 이정표를 남겼다. 1954 스위스월드컵을 포함해 과거 7차례의 본선에서 한국인 사령탑은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4강 신화를 이룬 뒤 처음으로 이번 남아공월드컵에 한국인 감독으로 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해 발군의 성적을 올렸다. 비록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한국축구는 업그레이드 한 위용을 과시, 세계축구의 중심권에 들어섰음을 확인하는 결실을 맺었다.

절묘한 세트피스, 현란한 짧은 패스를 통한 세트 플레이 등 유럽과 남미 선수들의 전매 특허기술을 거침없이 구사하는 박주영 박지성 이청용 등은 세계적인 선수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한국축구가 앞으로 자신감을 갖고 더 큰 꿈을 향해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한 이번 남아공월드컵대회는 12번째 태극전사인 5천만 붉은악마에게도 잊을 수 없는 대회이다.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등 응원가를 목놓아 외치며 열렬하게 응원했던 2010년 6월 월드컵 열기는 아름다운 추억거리로 자리 잡을 것이다.

필자가 기자로서 이번 남아공월드컵대회 우루과이전 기사를 다시 쓴다면 첫 리드를 ‘한국축구, 4년 후 8강을 기약한다’로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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