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립문서보관소 소장 6.25 관련 문서 공개
中 참전후 원폭투하 고려 담은 문서도 `햇볕'

(서울=연합뉴스) 미국이 6.25 전쟁 발발 전 북한군의 수상한 동향을 파악했음에도 전쟁 직전까지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저평가한 채 특별한 대비를 하지 않았던 정황을 보여주는 문서들이 공개됐다.

이 문서들은 주미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과 국립중앙도서관이 22일부터 한미 양국에서 동시 개최되는 6.25 전쟁 60주년 특별 기획전을 통해 미 국립문서보관소(NARA)의 6.25 관련 문서들을 발굴해 소개하면서 일반에 알려지게 됐다.

이날 한국문화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미국 합동참모부 합동전략기획위원회는 전쟁 이틀 전인 1950년 6월23일 작성한 1급 비밀 보고서에서 `합참은 한국이 전략적 측면에서 그리 가치가 없다는 점에 동의했다. 따라서 군사적 측면에서 상호방위지원 프로그램에 따른 대 한국 자금 추가 지원을 정당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적시했다.

또한 합참은 `한국에 대한 추가 군사지원'이란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 한반도에서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 등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한 언급은 아예 담지 않았다.

또 전쟁 15개월 전인 1949년 3월22일 미 국가안보회의(NSC)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1급 비밀문서에 무장된 한국군 6만5천명 양성 등 우리 군.경에 대한 지원 계획과 함께 1949년 6월30일까지 주한미군을 완전히 철수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반면 6.25 종전 후의 미군 보고서에서는 미측이 북한의 심상치 않은 군사 동향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던 정황이 드러나 있다.

1956년 2월 미 태평양 사령부 군사편찬실은 `북한의 침략 이전 무력증강'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북한의 남침 이전 모든 군사작전은 정보 참모부 산하 정보기관에 의해 면밀히 탐지됐으며, 포괄적인 보고서가 작성돼 육군부에 보고됐다'며 `1949년 10월부터 1950년 6월 사이에 습득한 정보에 의하면 북한군이 잠재적으로 공세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난다'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미 합참은 중공의 한국전 개입이 전쟁의 중대 변수로 부각된 직후인 1950년 12월4일 국방장관에게 제출한 비망록에서 `원자폭탄을 사용하는 것이 미군의 참변을 방지하는 유일한 물질적 수단이 되는 상황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전쟁 기간 한미간에 존재했던 일부 외교 마찰을 보여주는 문서들도 공개됐다.

반공포로 석방이 있은 지 열흘 뒤인 1953년 6월28일 존 포스터 덜레스 미 국무장관은 방미 중이던 백두진 총리와의 대화에서 `이 대통령의 행동(반공포로 석방)은 적군만 이롭게 할 뿐이다. 이 대통령이 우리 등 뒤에서 어떻게 계획을 세우고 행동에 옮겼는지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항의한 것으로 비밀 해제된 미국 외교문서에 나타났다.

또 미 극동군 사령부 문서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1952년 8월2일 배낚시를 즐기다 부산 동래 앞바다 초도 부근에서 경계 근무 중이던 미 중앙정보국(CIA) 소속 한국인 경비원들의 경고사격을 받은 뒤 CIA가 한국 대통령이 탄 배인 줄 알면서 고의로 총격을 가했다고 주장, 양국 간에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아울러 미 국무부 정보연구실은 정전협정 체결 직후인 1953년 8월7일 정보분석 보고서에서 이 대통령이 정전협정 이후의 정치 회담에서 협상 입지를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해 정전 협정에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주한 미 대사관이 1952년 10월15일 작성한 3급 비밀 비망록을 통해 미측이 `독도 영유권 분쟁에 개입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하면서도 사실상 독도 영유권이 일본에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던 정황도 공개됐다.

한편 해방 후 남한에 상륙한 존 하지 미군 중장은 1945년 9월24일 태평양군 사령관 앞으로 보낸 1급 비밀보고서에서 `한국이 서로 판이한 정책의 두 점령지역으로 분단돼 있는 것은 통일 국가를 만드는데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가 될 것'이라고 적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또 `한국인들은 몇몇만 빼놓고는 신뢰가 가지 않고, 업무를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다'며 '전반적으로 한국인들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조차도 대부분이 몽상가들이며 실제로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밝혔다.

이 외에도 더글러스 맥아더 미 극동군 사령관이 북한의 남침 보고를 1950년 6월25일 오전 9시25분(한국시각)에 받았음을 보여주는 문서와 1951년 4월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사령관을 해임할 때 본인에게 통지된 메시지 등도 함께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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