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원의 내부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한 병원의 내부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일부기관, 경로당 등에서 집단교육 후 작성

전문가 “어르신들, 자기의사도 제대로 표시 못했을 것”

복지부 “의향서 작성단계서 심도 있는 상담해야”

[천지일보=강병용 기자]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이 시행된 지 한 달 만에 존엄사를 선택한 사람들이 3600명을 넘어섰다. 임종기에 연명을 위한 심폐소생술 등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과 직결된 중요한 사항인 의향서 작성이 개별 심층 면담이 아닌 집단교육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정황이 천지일보 취재 결과 포착돼 논란이 예상된다.

시범사업 기관들은 경로당이나 사회복지관 등의 요청으로 강사를 파견해 ‘웰다잉(Well Dying)’ 또는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등과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었다.

한 기관의 관계자는 “강의 프로그램 중 죽음이 무엇인지, 웰다잉은 무엇인지, 사전의료의향서는 누구를 위해 쓰는지 등에 대해 강의를 한다”면서 “강의 후 대부분 인원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16명 청강하면 16명 다 쓰고 한, 두 명을 제외하고 안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심층면담을 통해 진행해야 할 의향서 작성이 집단교육을 통해 이뤄졌던 것이다.

연명의료법(존엄사법)의 본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을 제도화함으로써 환자가 스스로 연명의료 시행 여부를 결정해 환자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4가지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히는 서류다. 이는 환자 본인이 임종과정에 있을 때 생명 유지와 직결되는 중요한 의사를 표명하는 서류로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는 집단교육을 통한 의향서 작성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시행 한 달여 만에 수천명이 의향서에 동의한 것도 이해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시범사업을 위한 숫자 늘리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인자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사무국장은 “시범사업기간에 일대일 상담을 기본 원칙으로 했다면 이렇게 많은 숫자가 나오기 힘들다”면서 “의향서 작성을 그렇게 (단체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라는 말도 어르신들에게는 어려운 용어”라며 “어르신들이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집단교육을 하고 (의향서 작성을) 했다면 어르신들은 자기의사도 제대로 표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에서도 집단교육으로 생명과 직결된 중요한 사항인 의향서를 작성하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윤주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사무관은 “교육은 어디서든지 누구에게나 이뤄질 수 있지만 의향서 작성단계에서는 심도 있는 대화와 상담이 필요하다”며 “시범 사업기관에도 그렇게 안내되고 있는데, 만약 그렇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면 이는 제도 초기라서 실제현장에서 혼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 사무관은 “앞으로 (집단교육을 통한 의향서 남발 등) 이러한 내용이 있는지 확인해서 계도해 본 사업 때는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시범사업은 지난 10월 23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3개월가량 진행된다. 각당복지재단, 대한웰다잉협회,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등의 비영리 단체와 의료기관인 신촌세브란스병원, 충남대병원까지 총 5곳에서 진행해 의향서를 받고 있다. 지난 7일 기준 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3690명으로 집계됐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내년 2월 4일부터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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