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은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국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할 때 고령화사회로 간주한다. 14%와 20% 이상이면 각각 고령사회, 초고령화사회로 부른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이미 대한민국은 2000년 고령화사회로 진입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를 넘어 고령사회 진입을 알렸다. 이대로라면 초고령화사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경남 의령군이나 전남 장성군처럼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지역도 있어 초고령화사회 진입은 사실상 우리 앞에 당면한 과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결혼과 출산이 현저히 줄어들고 노인인구는 늘고 있지만 아직 ‘고령사회’를 대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는 상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체계적인 시스템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령인구 즉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 문화적인 부분에서의 인식의 변화다. 다시 말해 노인층을 대하는 젊은이들의 시선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며칠 전 접한 한 기사는 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사회의 불편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맘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어디를 가든 환영받지 못하는 모습, 심지어 가족조차 불편해하고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인식하는 모습은 정말 세상 말세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씁쓸함을 남겼다.

극단적인 예시들을 기사의 소재로 삼았을 수는 있으나 그런 모습이 또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으니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자신들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어도, ‘~카더라’는 말만 듣고 노인들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일이 태반이라는 점이다. 오죽하면 ‘지공거사’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지공거사에서 ‘지공’이란 ‘지하철 운임 공짜’라는 말의 줄임말이며, ‘거사’는 ‘숨어 살며 벼슬 않는 선비’ ‘불교에서 쓰는 출가하지 않는 재가불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지공거사’는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노인들을 살짝 꼬아 부르는 말이다. 가히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무임승차가 지하철 운영 적자의 큰 부분을 차지하자 지하철 무임승차가 가능한 노인들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은 이들도 많다. 혹여 지하철 안에서 노인과 젊은이 사이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돈도 안 내고 공짜로 타는 주제에…”와 같은 막말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지하철뿐만이 아니다. 노인들의 경우 택시 잡기가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엄연히 불법이지만 승차거부가 만연하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노인들은 가까운 거리를 가기 때문에 영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카페나 음식점처럼 다양한 사람이 찾는 곳, 특히 카페처럼 젊은 연령층이 많이 찾는 곳에서는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하는 곳도 있다고 하니 세상 참 강퍅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치가 보여 일부러 구석진 자리에 가 앉는 경우도 많다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물론 노인들을 향한 잘못되고 왜곡된 시선에는 일부 노인들의 일명 ‘꼰대’와 같은 언행이 불씨를 지피기도 했겠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만 더 관대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젊은이들이 말하는 꼰대 같은 노인들도 젊은 시절 힘들고 어렵게 일하며 이 사회를 일구어온 주인공들이며, 지금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젊은이들도 시간이 흐르면 노인이 된다. 그때가 되면 그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지금의 젊은이들이 바로 꼰대가 될 수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는 숨 돌릴 틈 없이 빡빡하고 강퍅한 삶을 살고 있다. 개개인의 삶에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지금 이 세대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처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폭발 일보 직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테러와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과 전쟁이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가장 어둡다는 것은 곧 날이 밝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요,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온 인류가 너무도 간절히 평화를 원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우리 조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다. 세상의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타인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 판단하며 이해하려 들지 않는 자신의 마음이다. 이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분쟁과 전쟁과 같은 일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내 안의 나를 이기지 못하면 이 세상에는 분노만이 가득 차게 될 것이며, 어느 드라마에 나와 한때 유행했던 말처럼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 특히 어르신들을 향한 이해와 배려는 부메랑이 되어 다시금 자신에게 돌아오고, 나아가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그렇게 조금씩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하루하루가 쌓이면 분명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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