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 화가 건국대 겸임교수

창조성 또는 창의성은 어느 분야에나 필요한 덕목이다. 진정한 발견의 항해는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고 프루스트가 말한 바 있듯이 틀에서 벗어나 다르게 보라며 상식파괴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술에만 창조성이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이 사라진 지도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이것은 소수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는 게 현실이다.

나는 책을 읽고, 사고를 하면서, 글을 쓰면서, 또 가르치면서 이 세상 모든 일은 하나로 통한다는 통섭 개념을 확신하게 된다. 모든 행위는 다 한 방향으로 연결이 될 수 있다. 굳이 어떤 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 이론이 여기저기에서 통할 수 있음은 매우 재미있는 현상이다. 소위 ‘고수’ 또는 ‘대가’라는 사람들은 통섭의 진리를 깨우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하수’라는 사람들은 통섭의 법칙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숟가락 위에 밥을 얹어주어야 식사를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수동적으로 학습된 사람들인 것이다.

‘엉뚱’은 나의 처가 나한테 붙여준 별명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 ‘엉뚱’을 나는 좋아한다. 엉뚱하다는 것은 창의적이다라는 말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트리즈(TRIZ)에서 나오는 사례 중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주차문제로 시민들에게 문제해결 공모를 한 적이 있었다. 좁은 차도에 자꾸 사람들이 임시 정차를 하여 교통이 막히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이었다, 예상대로 일반적인, 상식적인 아이디어가 무수히 나왔는데 최종 당선작은 남들이 보면 엉뚱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는 번호판(number plate)을 떼는 것이었다. 번호판 없이 차도를 활주하면 경찰에게 바로 잡히고 엄청난 벌금을 부과당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수준을 달리 하여 해결한 우수 사례이다.

우리는 문제를 풀 때 같은 시스템 레벨에서 그 문제를 바라본다. 높이를 달리 하면 볼 수 있는 답을 같은 눈높이로 보면 절대로 볼 수가 없다. 진정 창조적인 문제해결을 원하면 눈높이를 달리 하라고 권하고 싶다.
요네하라 마리는 그의 책에서 교통 체증 탈출방법으로 탈부착식 사이렌과 ‘경찰’이라는 단어가 적힌 스티커로 구급차나 경찰차로 둔갑하면 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비대칭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데일 치후리란 유리작가는 새로운 작품세계를 열었다. 남들이 대칭을 추구할 때 한쪽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만들어 차별화에 성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트리즈(TRIZ)에서 얘기하는 용어인 소위 ‘비대칭성의 원리’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 원리는 시행될 수 있는 것이다.

크림 전쟁에서 나이팅게일은 병사들이 부상이나 영양실조 때문이 아닌 전염병 때문에 더 많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이는 큰 발견이 아니다. 그녀는 단지 제대로 된 정보를 가졌을 뿐이다. 우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남들이 가는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닌 경우가 많다.

월드컵 시즌이라고 밤낮 TV 앞에 붙어있어서야 남다른 창조가 나올까? 소위 ‘스펙쌓기’라는 유행은 우리 사랑스러운 학생 및 젊은 청춘들을 획일화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전염병’이 아닐까? 고정 관념에서 벗어날 때 문제해결이 가능하다. 즉,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길 대신, 나만의 가야 할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그러나, 진정한 성공을 위한 방향성이 필요하다. 규칙이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안전한 범위에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스펙도 하나의 규칙이다. 규칙에 대한 포기는 우리에게 상당한 파워를 부여하고 상황을 주도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만든다.

서울올림픽 기간에 1003개의 TV 수상기로 ‘다다익선’이라는 작품을 만든 백남준이 1988년 가을에 한 말을 소개하고자 한다. “만일 뉴욕에서 가난한 아티스트가 되어 있는 47세의 자신의 기분을 25세 때 알았더라면, 나는 다른 인생설계를 하였을 것이다. 앞 일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인생에는 ‘빨리 감기’의 버튼도 ‘되감기’의 버튼도 없기 때문이다.”

누구는 TV로 월드컵을 보고 누구는 TV로 작품을 만든다. 세월을 기다릴 것인가, 시간을 활용할 것인가는 우리의 중요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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