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6월 2일 지방선거 결과는 이변이었다. 성난 바다와 같은 민심이 이변을 연출한 선거였다.

잔잔하던 바다가 왜 갑자기 거칠어졌을까. 해저에서 화산이라도 들끓고 있었던 것일까. 다 이겼다고 생각한 선거를 여당인 한나라당은 졌다. 결과는 패색이 짙던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숨어 있던 민심은 준엄하고 무섭고 냉정했다. 과학이라던 여론조사도 선거 운동 과정의 민심을 헛짚었다. 여론조사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신뢰할 것은 못 된다는 것이 입증됐다.

그런 여론조사가 놀랍게도 투표장의 출구조사에서는 거의 완벽한 적중률을 과시했다. 실제 결과와 거의 일치했다. 여론조사가 과학이라는 것을 아주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기사회생한 민주당은 환호작약(歡呼雀躍)했다. 승리의 여세를 몰아 대북 대결정책의 철폐와 4대강 사업의 중단, 세종시 원안고수, 내각총사퇴를 주장하는 공세를 폈다. 뜻밖의 패배에 충격을 받은 한나라당은 당대표를 비롯한 선거에 관여한 지도부가 전격적으로 사퇴했다. 청와대 비서실장도 사의를 표했다.

침통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참담한  패배가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을 한나라당은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만이다. 거세게 몰아치는 북풍(北風)을 과신한 탓에 밑바닥에서 들끓고 있던 민심을 제대로 몰랐다.

들끓던 민심은 투표를 통해 화산처럼 분출했다. 그것이 이변을 연출했다. 이번 지방선거를 바람 대 바람의 대결장으로 보았던 것은 착시(錯視)였다. 여당은 천안함 폭침 사태에 의한 북풍을, 야당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에 따른 노풍(盧風)을 선동적이며 경쟁적으로 선거판에 끌어 들였다.

여야가 각각 그것을 역이용해 여당은  ‘과거 실패한 정권으로 회귀하자는 것이냐’고 대응하고 야당은 ‘전쟁이냐 평화냐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결판이 날 것’이라고도 되받아쳤다. 대권(大權) 싸움 같은 지방선거였다.

이렇게 크고 강한 ‘바람’을 여야가 지나치게 선거판에 끌어 들이는 것에 대한 역풍(逆風)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북풍, 노풍, 역풍들이 여야에 가져다준 종합적인 득실(得失)은 계측(計測)이 간단치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바람’이 선거 판세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방선거에서 마땅히 주요 이슈(Issue)가 돼야 할 지역 경제 활성화와 지역 개발계획, 주민 참여 자치의 활성화, 주민 삶의 질 향상과 같은 공약들도 표심(票心)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 작고 하찮은 이슈로 전락해버렸다.

이것이 6월 2일 지방선거가 보여준 큰 특징이다. 지방선거가 마치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 같았다. 이는 정당공천 제도가 빚어낸 지방선거의 탈선이며 일탈(逸脫)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판세를 뒤집어 버린 들끓던 민심은 무엇이었나. 여야가 못 읽어낸 반란적(反亂的)이라고 해야 할 감추어졌던 표심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정부 시책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공연히 건드려 덧나고 불편해진 국민의 심기(Sentiment)였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도가 50%를 넘나드는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상황이었으므로 여당인 한나라당이 충분히 방심하고 간과하고 오판할 만한 사안이었다.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시책을 보자. 이들 사업은 국민의 여론을 찬반으로 첨예하게 갈라놓았었다.

특히 4대강 사업은 종교계와 환경단체들의 조직적이고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있었지 않았나. 이에 반대하는 한 스님은 분신자살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 사업들의 추진과정은 충분한 설득과 소통의 노력보다는 일방독주의 인상을 강하게 각인(刻印)시켰다.

이에 대한 불만이 표심의 밑바닥에서 들끓고 있었다. 노풍은 이를 더욱 들끓게 부채질했다. 그뿐이 아니다. 옛일로 잊혀져 잔잔해진 소고기 수입현상 때의 ‘촛불의 추억’을 건드려 덧나게 했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이다. 민심을 사납게 출렁이게 했다.

여기에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의 불교계와의 마찰이나 설화(舌禍)까지 겹쳐 성난 민심은 폭발할 분화구를 찾고 있었다. 그것이 6월 2일 지방선거였다.

이렇게 속에서 들끓던 반란적인 ‘표심’들은 적극적으로 투표장에 나왔다. 투표장에 나와 속마음을 드러내고 투표율을 높였다. 반대로 여론조사 과정에서 압도적으로 여당을 지지했던 표심들은 선거 결과가 투표를 하나마나 뻔히 여당의 승리일 것이라고 보고 투표장에 나오는 것을 소홀히 했다.

이들이 투표장에만 제대로 나왔어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민주당의 승리는 방심하고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한 한나라당이 거저 갖다 바친 것이나 다름없다. 민주당의 압승은 국민이 한나라당과 비교 평가해 내린 월등한 평가점수에 의한 것이 아니다. 민심의 흡족한 선택이 아니었다.

이것을 안다면 민주당은 환호작약하고 승리에 도취해 있을 것이 아니라 겸손하고 겸허해져야 한다. 한나라당 역시 졌다고 절망에 침잔(沈殘)해 있을 것도 없다. 언제 또 축배와 고배(苦杯)를 바꾸어 마셔야할지 모르지 않은가.

민심은 바다이기도 하지만 뜬구름이기도 하다. 어느 당이든 뜬구름 같은 민심이 자기편에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면 매사 진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방권력을 쥔 민주당이 벌써부터 중앙정부와 일전불사를 외치는 것은 첫 걸음부터 낭떠러지를 향해 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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