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2주기 해월신사(최시형) 순도일 묘소 참례식에 참여해 분향하고 있는 임운길 천도교 교령(6월 1일 경기도 여주 천덕산). ⓒ천지일보(뉴스천지)

“해월신사(최시형)의 순도정신 받들어 대도중흥 이뤄야”

[천지일보=이길상 기자] 천도교중앙총부는 ‘제112주기 해월신사 순도일 묘소 참례식’을 1일 거행했다. 신사(神師)의 순도(殉道)일은 6월 2일이지만 선거로 인해 하루 앞당겨졌다. 참례식에는 임운길 천도교 교령을 비롯한 천도교 교인 약 70명이 참석했다. 해월신사는 천도교 제2세 교조인 최시형 선생을 천도교에서 일컫는 말이다.

천도교 임운길 교령에게 참례식 참가 소감을 묻자 “교령의 중책을 맡은 후 처음으로 신사님 묘전(墓前)에서 심고(心告)를 하니 더욱 감회가 깊다”면서 “우리는 신사님의 순도정신을 받들어서 기필코 대도중흥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어 “반드시 수도하는 교회, 화합하는 교회, 포덕하는 교회가 되도록 힘쓰겠다”면서 “특히 이신환성 정신개벽수련운동으로 교회의 정신적 기초를 튼튼히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도교 교인이자 해월신사의 유족인 이진봉 씨는 “신사님은 1898년 3월 강원도 원주에서 체포돼 서울로 압송, 같은 해 6월 교수형을 당하고 그 시신이 시구(屍軀)문 밖으로 던져졌다. 버려진 시신을 제자들이 수습해 임시로 서울 송파로 옮겼다. 그 후 경기도 이천의 이상화(천도교인) 씨의 산에 약 3년 간 시신을 매장했다가 지금의 여주 천덕산에 묘소를 마련해 안장했다”며 “의암 손병희 선생 등 3명이 이천에서 이곳 여주 첩첩산중까지 시신을 운구해 왔다”고 전했다.

이영복 종법사는 신사의 묘비에 대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미 8군의 협조를 얻어 헬기로 묘비를 옮기기로 계획돼 있었는데 10·26 사태가 발생하고 비상시국이 되자 미 8군에서는 ‘민간인에게 헬기지원을 할 수 없다’고 태도를 바꿨다”면서 “묘비를 이곳까지 옮기는데 꼬박 2주일이 걸렸다”고 당시 힘들었던 상황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당시에는 한 사람도 다니기 힘든 길이었다. 신사님의 탄신일(3월 21일) 이틀 전인 3월 19일 저녁에 묘비가 이곳에 도착했다”면서 “이 묘비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건립됐다. 우리 천도교인들이 동귀일체(同歸一體) 돼 새로운 역사창조를 위해 힘을 다하자”고 당부했다.

한편 해월신사는 의암 손병희의 여동생(손시화)과 혼인했다. 장남인 최동희는 고려혁명당 당수로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했고 차남 최동호는 3·1만세운동에서 활약하다 순국했다.

※이신환성(以身換性): 육신관념을 성령으로 바꾸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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