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연휴가 끝이 났다. 황금들녘은 어울리지만 황금연휴라는 표현은 왠지 어색할 정도로 유익했다기보다 어쩌면 지루하고 막연하고 어색하고 씁쓸했던 기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 한다. 어찌됐던 길고 긴 연휴의 여정을 끝내고 이제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와 분주하게 아침을 여는 모습이다.

연휴 중 ‘낀 날’인 10월 2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의사봉을 세 번 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국민들은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10일간의 연휴를 갖게 됐다.

아쉬운 것은 연휴 자체보다도 연휴를 규정한 배경과 이유에 있다 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수 진작 소비촉진’이라는 이유 외엔 그 어떤 다른 언급은 없었다. 국가가 정한 기념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내수 진작을 위해 국민들은 소비하고 해외여행의 기회로 삼는 것인가. 물론 국가 경영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해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국가가 정한 기념일은 오늘의 대한민국과 내 자신이 있기까지의 역사이며 획기적이고 숭고한 의미와 가치가 담긴 뜻 깊은 날이기에 그 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기리라고 정해진 날이다. 깨어있는 국민이라면 그 날의 의사봉과 함께 규정하는 지도자의 일성(一聲)에 가슴이 매여 왔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선진 문화국민이라고 자부하는데, 지도자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는 국민들을 비문명국의 국민으로 취급하며 무시하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필자만의 생각이었을까.

교육을 일컬어 백년대계(百年大計)라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육현실은 당리당략과 이념논쟁에 볼모로 잡혀있다. 지도자의 의식과 교육정책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가늠자다. 성서에 보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했다. 인도하는 소경도 문제지만 심각한 것은 따라가는 소경이다. 소경을 따라간다는 것은 자신이 소경이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소경이 아니라면 소경된 자를 따라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교훈이며, 이 시대 우리에게 주는 큰 메시지다.

국군의 날, 개천절, 한글날 어느 하나 의미 없는 날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국경일이 갖는 참된 의미는 이념과 성향과 정파에 의해 왜곡돼 그 본질과 의미가 퇴색돼 가고 있어도 이를 바로잡아 진정한 국경일을 섬기겠다는 지도자와 위정자와 교육정책은 실종돼 버렸고, 그 결과 국경일은 한 개인의 인기영합을 위해 호도돼 가는 슬픈 현실을 맞게 된 것이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작금의 현실은 북핵 위기 등으로 인해 한반도 안보위기는 극에 달해 있고, 주변국 그 어느 나라와도 온전한 외교관계가 성립되지도 성숙되지도 못한 상태며, 중국의 사드보복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추락하는 기업경제 나아가 한미 FTA 폐기 등 모든 현안이 불안하기만 한 가운데서도 마치 안정된 나라인 양 웃음으로 포장하고, 지도자들의 휴가가 강조되고, 국민들의 연휴가 강조되는 이상한 나라가 돼 가고 있으니, 그야말로 안보불감증의 결과인지 아니면 참으로 야당과 일각의 헛된 주장들이 사실인지 국민들은 서서히 궁금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적폐를 외치지만 그 적폐를 답습해 가고 있고 나아가 또 다른 적폐를 양산해 가는 듯한 기류가 감지되는 것은 하나의 기우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경일이 갖는 의미와 가치다. 국경일과 기념일을 기리는 이유는 그 날의 의미를 바르게 깨닫고 계승함으로써 그 날과 주인공의 생각과 정신을 오늘에 와서 완성 짓고 이루라는 시대적 명령이라는 사실을 생각이나 해 봤을까.

지면관계상 모든 국경일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우선 ‘한글날’이 갖는 성격에 대해 진단해 보자.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571돌을 기념하는 날이다. 15세기 상류층이 아닌 하층민을 위해 1443년 훈민정음이 창제됐고, 그 후 3년 뒤인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원리, 취지, 운용방법, 역사적 의미 등)이 나온 날을 기념하는 것이 기본 취지다. 이처럼 우수한 한글이 창제됐지만, 당시 특정세력인 기득권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우려 때문에 한글은 그릇된 문자로 취급돼 온 것도 사실이다.

당시 상류층만이 사용하던 글자는 한자였다. 이 한자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뜻글자 즉, 표의문자였으므로 일반 백성이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문자였다. 이에 세종은 백성을 긍휼히 여겨 만백성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문자를 고안해 낼 것을 작심하고 만든 것이 바로 한글이며, 이는 뜻이 아닌 소리글자 즉 표음문자로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인류보편의 문자 즉, 한글을 창제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한글만을 사용하라는 취지도 아니며, 기존에 사용하는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므로 누구든지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한글창제의 취지와 목적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초대 자유당 시절 문교부 장관을 역임한 안호상 박사와 중국 문호인 임어당 박사와의 대화 속에 나온 일화 하나를 소개해 보자. 안호상 박사는 한자 사용의 애로점을 설명하자 임어당 박사는 한자는 본래 당신네 글인데 무슨 말이냐는 웃지 못할 일화가 오늘날까지 우리 곁에 회자되고 있다. 즉, 한자는 중국의 역사 이전 ‘은나라’ 때 만들어졌으니, 그 은나라는 바로 한민족인 동이족이였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만물에는 뜻이 있다. 만물의 뜻과 의미가 담긴 한자를 배척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한자와 한글은 배척관계가 아닌 서로 보완관계에 있으며 나아가 혼용함으로써 모든 백성이 삶의 질을 높이고 문명을 발전시켜 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글과 한글날의 의미와 본질이 왜곡됨으로 한글날은 기념일이 아니라 한자와 한글이 서로 싸우며 갑론을박하는 모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국경일은 이와 같은 의미를 정확히 교육하고 홍보하고 알아가기를 힘쓰는 데 그 의미를 둬야 할 것이다. 돈 쓰는 날도 해외여행가는 날도 아니며,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낳은 어머니며 역사며 미래라는 점을 지도자들부터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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