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가 꼭 들어야 할 진실이 있다. 그 진실은 곧 순리고 진리고 이치다. 이는 만물을 지으시고 그 지으신 만물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하시는 창조주의 섭리기도 하다. 무덥던 여름도, 그 여름의 장마도, 세월의 순리 앞엔 속수무책이다. 메말랐던 나뭇가지에서 싹이 나고 연한 연둣빛 잎이 나고, 그 연한 연두는 짙푸른 초록으로 변해 온 세상을 덮더니, 서서히 서늘한 바람과 함께 그 색이 퇴색돼 갈 징조를 보인다. 이제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들고 또 지고, 눈이 내리면 온 지면은 순백의 색으로 변할 것이다. 만물을 지으신 이가 자기의 섭리로 운행하는 이 모든 변화를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지금 온 지구촌은 뜨겁다. 각기 자신들의 입장에 맞춘 자기식 정의(正義)는 인류 문명이 만든 최첨단 살상무기를 앞세워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으며, 그 중심에 이 한반도가 있다. 하지만 이 나라는 잠을 자고 있다. 해외 외신들은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한국 국민들은 위기감을 찾아 볼 수가 없다고 보도하고 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범한 나라여서일까. 아니다. 감각이 없어져 죽어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위험이 닥쳐와도 돈과 권력과 명예가 우선인 이상한 나라가 된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만물의 영장(靈長)인 우리 인생의 생각과 정신을 인도하는 종교가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이다.

종교가 부패하고, 생각을 깨우는 언론이 부패하고, 교육이 부패하니 정치와 사회와 가정이 부패하는 것이고, 그 결과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는 현실이 됐다.

이제 우리가 깨달을 것은 이러한 이 시대를 냉철히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시대가 가면 한 시대가 온다’는 순리다. 가는 시대는 왜 가고 오는 시대는 왜 오는가. 사실은 이러한 진리에 대해 종교는 물론 동서고금을 통한 선각자들은 이미 잘 알려왔다. 가고 와야 하는 시대는 인생뿐만이 아니라 만물까지도 고대(苦待)해 온 바다. 중요한 것은 지금 문 앞에 새 시대가 이미 와 있음을 인생과 만물의 부패가 징조로 우리에게 보이고 있다. 그리고 부패와 타락이 가져온 이 어두운 혼돈의 죄악세상은 희망의 새 시대를 잉태하고 있었고, 이제 때가 되어 나타났고, 인생은 물론 만물을 새롭게 해 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명이 낳은 최고의 살상무기로 인류를 말살하는 전쟁이 아니라 우주 만물을 살리는 생명과 평화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감각이 없어 보지도 듣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있으니 이 또한 신의 섭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경(經)의 한 구절이 어쩌면 이 시대를 잘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8)”

이처럼 시대마다 의인을 세워 부패한 지난 시대를 향해 외쳐봤지만 그 시대는 자기 고집과 버릇으로 살다가 마감해야 했다. 약 삼천 오백년 전 모세를 통해 출애굽 할 때도, 이천년 전 예수 초림의 때도 눈에 보이는 정치적 급변사태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의 계획을 이루어갔지만 역시 시대마다 하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부패로 멸망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된 오늘날도, 창조주 하나님은 자기의 마지막 역사 즉, 평화의 세계를 일촉즉발의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위기가 극에 달했을 때, 극적인 반전의 역사로 마무리 지어 가고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모세와 예수를 통해 이뤄온 것처럼, 이 마지막 때도 정하신 한 사람을 통해 핑계치 못하도록 믿을 만한 증거를 다 보이고, 또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회개하라 외치고 있다면, 노아 때처럼, 예수 초림 때처럼 귀 기울이지 않고 고집부리고 핍박만 하다가 깨닫지 못한 채 다 멸망으로 갈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할 때가 온 것 같다.

죽어가는 일이 있기에 살리는 일이 있는 것이며, 이를 분별해야 한다. 우리 앞에 죽는 길과 사는 길이 놓여 있다면 과연 어느 길을 택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도 답을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때 이 같은 역사가 동방(東方)에서 일어날 것을 수많은 선각자들의 손과 입을 들어 알려 왔다. 그렇다면 동방은 어디인가. ‘동(東)’은 해 뜨는 쪽을 말하며, ‘방(方)’은 방위각을 나타낸다. 즉, 동방은 ‘해 뜨는 곳(데)’을 의미하는 상징성을 가진 단어다. 해가 뜨지 않는 곳은 지구촌 그 어디에도 없으며, 동방이라는 국명을 가진 나라가 어디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함에도 옛 성인들이나 또 그들이 남긴 고 문헌을 통해 우리나라를 일컬어 ‘동방의 나라’라고 전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전(口傳)과 기록된 글을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우리는 그 답을 찾아야만 한다. 그 답은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그가 창조한 모든 피조물에게 골고루 비춰 생명을 주는 ‘해(시 84:11)’ 또는 ‘빛(요일 1:5)’이라고 성서에 분명히 기록돼 있다. 결국 ‘동방’이라 함은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가 이 땅에서 이뤄질 것을 알려 왔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이뤄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섭리 가운데 진행되는 한 시대의 끝과 새 시대의 시작은 막을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다. 낡아지고 쇠하여져 없어져 가는 시대에 미련을 두지 말고 희망의 새 시대를 바라보고 나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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