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 초당마을 초당초등학교 부근 ‘비보호 좌회전’ 설치 모습. 지난달 19일 이곳에서 ‘비보호 좌회전’ 신호와 횡단보도의 불이 동시에 녹색등이 들어온 가운데, 좌회전 진입 차량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있어도 멈추지 않고 계속 주행하고 있다(빨간색 원). 과거 이곳에서는 ‘비보호 좌회전’ 차량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주변에는 초등학교도 있다(노란색 원). 용인시는 이러한 신호체계가 2015년부터 대거 도입됐고, 안전을 위한 사고발생 파악은 하지 않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교통당국, 사고 잦은데 통계조차 없어
용인시, 교통흐름만 고려해 ‘비보호’ 확대
전문가 “신호개선·홍보활동 등 필요해”

[천지일보=손성환 기자] #. 지난 6월 5일 경기도 포천시에서는 ‘비보호 좌회전’을 하는 버스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55살 여성이 치이면서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달 16일에는 전남 담양군에서 ‘비보호 좌회전’ 차량과 직진 차량이 충돌해 60살 송모씨가 숨지기도 했다.

이처럼 ‘비보호 좌회전’으로 인한 인명 피해 사고가 적지 않게 일어나지만 관계당국은 ‘비보호 좌회전’ 신호나 사고 통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용인시를 대상으로 ‘비보호 좌회전’ 설치 현황과 관리 상황을 살펴봤다. 용인시는 교통흐름에 좋다는 이유로 비보호 좌회전을 크게 늘리고 있지만 ‘비보호 좌회전’에서 인명 피해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한국엔 낯선 ‘비보호 좌회전’

‘비보호 좌회전’은 직진신호가 녹색일 때 반대편에서 직진하는 차량이 없을 경우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좌회전을 할 수 있는 신호체계다. 미국 등 외국에서는 보편적인 교통문화이지만 우리나라에선 2010년부터 본격 정립돼 도입된 다소 낯선 신호체계다. 이에 대한 운전자 교육도 잘 이뤄지지 않아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비보호 좌회전은 좌회전 신호등이 설치된 ‘보호 좌회전’과는 달리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도 빨리 좌회전을 할 수 있어 교통흐름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합리주의를 중시하는 해외에선 보편화돼 있고 어떻게 안전하게 진행해야 하는지 잘 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나라는 외국보다 더 강화된 체계로 신호등에 ‘비보호 좌회전’ 문구도 있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 ‘비보호 좌회전’ 진입 가능 신호 홍보 전단 (제공: 경찰청)

◆인명사고 위험… 경찰·용인시 “잘 몰라”

‘비보호 좌회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차량이 좌회전 직후 사람을 칠 위험성이 높다는 점이다. 교차로에서 비보호 좌회전을 할 수 있는 ‘직진 녹색신호’가 들어올 때, 동시에 좌회전하는 차량의 진행 방향에 맞닥뜨리는 횡단보도에서도 보행신호가 켜진다.

운전자는 맞은 편 직진 차량이 가까이 오기 전에 좌회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빨리 지나가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한다. 또 맞은편 차량에만 주의하면서 급하게 좌회전을 하다 보니 횡단보도에 사람이 건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해 인명 피해 사고로 이어지곤 한다.

지난 2011년 여름 용인시 기흥구 동백지구 초당마을에선 비보호 좌회전을 하는 SUV 차량이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를 보고 정상적으로 건너던 50대의 여성을 치는 사고가 있었다.

용인동부경찰서의 당시 사건 담당 경찰은 사고 원인을 운전자만의 잘못으로 보지 않았다. 담당 경찰은 “해당 지역 비보호 좌회전 신호체계도 문제가 있다”면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비보호 좌회전이 유지되고 있다. 차가 사람을 치는 경우는 중상을 입을 수도 있다. 사고 지역 100미터 안에는 초등학교가 있어 아이들 통학 시에도 사고 위험성은 상존한다.

용인동부경찰서 교통운영과 관계자는 “교통사고 통계는 있어도 ‘비보호 좌회전’ 사고 통계는 알지 못한다”고 밝혀 비보호 좌회전 사고에 대해 관리가 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용인시 신호교차로 ‘비보호 좌회전(PPLT)’ 통계 (제공: 용인시)

◆“사고 시 바꿔야”… 용인, 오로지 증설만

경찰청 ‘2017년 교통신호기 설치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비보호 좌회전’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 신호 체계를 다시 ‘보호 좌회전’으로 바꿔야 하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보호 좌회전 장소에서 사고가 발생했는지 명확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매뉴얼에서는 ‘좌회전 비보호 처리 결정은 좌회전 차로 수, 좌회전 차량과 보행자 상충정도, 과거 교통사고 횟수(연간 사고 4회)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기록돼 있다.

경찰청 교통운영과 김동주 경감은 “‘비보호 좌회전’이 소통의 효과는 있지만 그 현장이 비보호 좌회전에 맞지 않다면 ‘보호 좌회전’으로 바꿔야 한다”며 “교통 상황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사고 유무에 따라 신호 운영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용인시 전체 교통신호기 1329기 중 228기에 ‘비보호 좌회전’이 적용된 상태로 전체 신호기의 17.2%에 해당한다. 용인시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지난 2015년부터 ‘비보호 좌회전’을 확대했고 현재 ‘비보호 좌회전’ 신호기의 80%가 그 이후 늘어났다”고 밝혔다.

종합해보면, 용인시는 ‘교통흐름에 도움이 되고 운전자들에게 반응이 좋다’는 이유로 ‘비보호 좌회전’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사고가 발생한 사례가 있지만 사고 집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서는 “전국의 지자체와 관할 경찰서에서 ‘비보호 좌회전’ 신호기에 대한 통계나 사고 집계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용인시를 대상으로 알아본 결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지자체에 맡긴 ‘비보호 좌회전’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경찰 매뉴얼도 문제다. 한 사람의 목숨도 소중한데 ‘비보호 좌회전’ 인명 피해 사고가 ‘연간 4회 이상’ 발생하면 보호 신호를 고려한다고 돼 있는데, 이를 ‘한 번이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보호 신호 등을 고려한다’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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