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중국정부가 5월 7일 우리의 중국주재 대사에게 김정일의 방중에 관해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발표됐다. 과연 거기서 얼마만큼이나 우리 정부가 만족할 만한 설명이 이루어졌는지가 궁금하다. 그런 설명이 있었다고만 했지 그 내용이 공식적으로 자세하게 공개된 것은 없다. 그렇잖아도 김정일과 중국 지도자들이 나눈 대화가 선문선답(禪門禪答) 같고 전문가의 해독이 필요한 암호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렇기에 답답함과 궁금증이 더 할 수밖에 없다. 감추면 더 알고 싶어지는 것 아닌가. 공식적인 결산 명세가 없으니 이렇게 저렇게 나름대로 생각해보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자유다.

후진타오 주석은 김과의 회담에서 ‘양국의 내정과 외교상의 중대 문제나 국제사회, 지역의 형세 등 공통 관심사에 대해 전략적인 의사소통을 강화해 나가자’고 제언했다. 정상회담이라면 사랑방 좌담도 아니고 무엇을 토론하는 자리도 아니다. 실무선에서 사전에 꼼꼼히 작업을 하고 조율해 놓은 어젠더(Agenda)에 합의를 이루고 발표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렇게 불쑥 제언을 한다고 파격(破格)을 한 것은 예사로워 보이지가 않았다. 아무리 비공식 방문이고 사전에 그런 제언이 있을 것임이 논의됐더라도 그러하다. 여기에는 중국이 짐짓 의도적으로 대외에 알리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 있었던 것 아닌가. 돌출행동으로 사고치는 것을 예사로 아는 김정일을 시쳇말로 조인트 까고 앞으로는 물어보고 뭘 해도 하라는 엄중한 경고 아닌가. 이를 통해 세계 중심국가로서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과 리더십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싶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후 주석은 북한의 과거 무슨 행적들을 마음에 두고 이런 말을 했을까. 핵실험, 미사일발사, NLL(서해북방한계선) 도발, 부진한 6자회담일까. 그럴 수 있다. 혹여 금강산 재산몰수, 천안함 사태도 포함될까. 그것은 우리 욕심일 수 있지만 발표가 없으니 알 수가 없다. 후 주석은 이런 제언을 할 때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김정일의 표정은 썩 밝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찬동한다’고 대답했다. 내정간섭의 인상을 받았을까. 어쨌든 우리에게는 선문선답이고 해독하기 쉽지 않은 암호처럼 느껴지지만 그들끼리는 훤히 알아듣고 교감하는 얘기일 것이다. 이 암호를 풀어보고 싶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이 있을까. 북한 문제는 우리에게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그런 평범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중국에 간 김정일은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후 주석을 포함한 최고지도부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역할을 나누어 김정일과 회동했다. 산업시찰에 동행하고 영접과 환송을 했다. 후 주석이 직접 산업시찰에 동행하기도 했다. 그것도 파격이다. 정상외교에서 이렇게 융숭한 대접이 이루어진 전례가 있었을까. 김정일에 대한 의전은 과공(過恭)으로 비칠 정도였다. 왜 이런 과공이 필요했을까. 엄한 꾸지람의 보상이었을까. 그렇게도 생각되지만 끌어안아야만 될 냉정한 실리적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잘 따져 보아야 한다. 김정일을 중국은 부담스러운 존재로 생각하면서도 끌어안아야 국익에 더 보탬이 되는 안보적 외교적 경제적 실리적 자산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 까닭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나 중국을 대해야 할 것이다.

김정일이 이번 중국 방문으로 얻은 최고의 성과는 극진한 환대가 웅변하듯이 전통적인 혈맹의 복원과 그것의 확인이다. 고립무원의 김정일은 큰 안도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큰 성과다. 동시에 그것이 중국이 김정일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중국은 김정일의 권력세습에 대해서도 동의했다. ‘양국의 우의는 세대가 교체된다고 해서 변할 리가 없다’는 김정일의 말에 ‘양국의 우호관계를 대대손손 계승하는 것이 양국이 가진 공통된 역사적 책임’이라고 후 주석은 화답했다. 이것은 비교적 내용을 읽어내기 쉬운 선문선답이다. 짐작컨데 김정일을 끌어안아야 할 중국이 세습을 반대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원자바오 총리도 김정일에게 충고와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의 개혁 개방 건설의 경험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레토릭(Rhetoric: 修辭)은 부드러운 것 같으나 개혁개방을 받아들이라는 강력한 메시지 아닌가. 사실 북한의 개혁개방에 중국의 큰 이해가 걸려있다. 그런 개혁 개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김정일을 끌어안아야 한다. 그 극진한 환대의 속내를 짚어볼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발표된 것으로만 본다면 김정일이 중국에서 챙겨간 것은 현찰이나 현물은 별 것이 없다. 실속 없이 요란하고 소문만 크게 난 잔치였다. 체제유지에 대한 안도감과 자신감은 분명 챙긴 것이긴 하지만 극진한 환대나 전략적인 의사소통의 강화 및 개혁개방의 요구는 김정일이 떠안은 부채다. 그렇다면 김정일이 얻은 것이 무엇인가. 그 결산서가 궁금하다.

우리와 손잡는다면 그렇게만 챙길까. 그런데 그는 가까운 곳에 길이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피를 나눈 형제에 등을 돌리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그를 돌려세울 방법은 없는 것인가. 중국과 김정일이 가까워지는 것은 작은 걱정이지만 그가 우리와 멀어지는 것은 정말 큰 걱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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