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이 22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치킨의 맛을 보고 브랜드명을 맞히는 실기시험을 치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제1회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
치킨마니아 500여명 참석
필기·실기 과반 득점시 ‘합격’
28일 합격자 발표, 개별통보
‘쿡방’ ‘치킨메뉴판’ 보며 공부
“시험문제 생각보다 어려워”
“역사 쌓이면 자부심 느낄 것”

[천지일보=정인선 기자] “꼬끼오 꼬꼬꼬꼬~” 다음 소리를 듣고 진짜 닭소리를 고르시오.

닭 울음소리와 함께 진짜 치킨 고수를 가르는 시험이 시작됐다. 난데없이 울린 닭 울음소리에 시험장엔 잠시 웃음꽃이 피었지만, 치킨의 상식을 묻는 질문부터 치킨 프랜차이즈 제품과 관련된 진지한 문제를 맞닥들인 도전자들의 얼굴에선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졌다. 한 문제 한 문제 풀어나가면서 시험장 여기저기선 ‘아’하는 탄식도 흘러나왔다. 마치 수능시험장을 방불케 할 정도의 엄숙함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5분 남았습니다’ 시험 종료 시간이 임박해오자 OMR 카드를 바꿔달라는 다급한 외침이 잦아졌다.

중복이었던 지난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국내 최초로 치믈리에 자격시험이 치러졌다. ‘치믈리에’란 ‘치킨’과 와인 감별사를 일컫는 ‘소믈리에’의 합성어로, 치킨 맛을 감별하는 전문가를 뜻한다.

배달 애플리케이션 업체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대한민국 치킨 미각 1%를 찾아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진정한 치킨 고수를 가려내기 위해 마련됐다.

‘치킨의 나라’답게 치믈리에 자격시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열렬했다. 지난 7일 시험 접수 시작 1시간도 안 돼 지원자가 몰려 정원 500명이 조기 마감됐다. 이날 시험 시작 전부터 시험장의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닭 탈을 쓴 응시자부터 68일된 아이를 품에 안고 시험장을 찾은 아버지, 멀리 영국에서 온 사람까지 치킨을 사랑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방송인 하하와 FT아일랜드 멤버 최민환 등 연예인들도 함께했다.

▲ 제1회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 실기영역에 활용된 치킨상자(왼쪽)와 시험지.(제공: 우아한형제들)

시험은 1교시 필기 20분, 2교시 실기 30분으로 진행됐다. 필기시험은 듣기평가 3문제를 포함해 총 30문제, 실기는 블라인드 맛 테스트 형식으로 치킨의 브랜드명을 맞추는 12문제로 구성했다. 필기와 실기 각각 50% 이상을 맞혀야 배달의 민족이 발행하는 ‘치믈리에 자격증’이 주어진다. 합격자 발표는 28일 이뤄진다.

‘아직 공신력도 없는 자격증을 어디에 쓸 수 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도전자들에게 ‘치믈리에 자격증’은 남다른 의미와 자부심으로 다가온다. 이에 자격증을 따기 위한 그들의 숨은 노력도 상당했다.

대학 때 ‘치킨남’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치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김형준(27, 남)씨는 “유튜브를 통해 치믈리에 자격증 대비 강의를 듣고, 쿡방을 보면서 예상 기출문제를 풀어봤다”며 “하지만 찍어준 예상 문제가 하나도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다”고 말했다.

형준씨는 “처음엔 장난스럽게 지원했는데 문제가 어려워서 당황했다. 토익보다 더 진지하게 푼 것 같다”며 “치믈리에 자격증을 따면 자기소개서에 적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외에 시험 전날까지 모든 프랜차이즈의 치킨을 시켜 먹은 사람, 음식점 광고 책자를 보며 메뉴 숙지에 사활을 건 사람 등 치믈리에를 준비한 모습은 달라도 치킨에 대한 열정은 동일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지금은 장난스럽게 들리겠지만, 역사와 시간이 지나면 자부심을 느끼는 자격증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날 시험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진짜 닭 울음소리를 맞추는 1번 듣기평가부터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어 4장의 사진만 보고 ‘네네치킨의 스노윙 치킨’을 고르는 문제나 ‘치킨을 튀기기 가장 좋은 온도는?’ 등의 질문도 사람들의 진땀을 뺐다.

특히 총 12가지의 치킨을 맛보고 브랜드를 맞히는 실기는 모든 치킨을 섭렵했다는 고수들에게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치킨 상자에는 프라이드·가루·양념·핫양념 등 4종류의 치킨 조각들이 브랜드별로 3가지씩 담겼다. 각 치킨 조각을 먹어보고 브랜드를 판별해야 한다. 도전자들은 온 정신을 미각에 집중시키고 조금씩 여러 번 베어물어 치킨의 맛을 기억해나갔다. 하지만 브랜드명을 가리고 오직 치킨의 맛으로만 어떤 치킨인지 찾아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치킨 프랜차이즈 관계자도 “우리 브랜드 치킨도 못 찾아내겠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연세대학교 치킨동아리 ‘피닉스’의 홍준화(22) 회장은 “필기는 자신 있는데, 실기가 좀 어려웠다”며 “치킨이 식은 상태라 양념이나 시즈닝(가루)은 맛을 구별해내기가 더 어려웠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피닉스 전 회장인 서보근(29)씨도 “듣기평가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닭 울음소리에 깜짝 놀랐다. 합격엔 자신 있지만, 문제가 생각보다 어려워서 치킨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성호경 배달의민족 홍보팀장은 문제 난이도에 대해 “치킨 마니아라면 흥미롭게 풀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출제했다”며 “참가자들의 반 이상은 합격선을 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우아한형제들은 내년에도 2회 치믈리에 자격시험을 개최할 예정이다. 성 팀장은 “1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2회, 3회 행사를 이어나가 ‘치믈리에’에 대한 권위를 쌓아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 치믈리에가 되면 좋은점. (제공: 우아한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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