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작품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나무’ 앞에서 이이남 작가가 미소 짓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

명화에 시간의 흐름 담아
원작 속 고정된 관념 깨뜨려

단순히 움직이는 그림 아닌
새로운 시각 표현에 의미

박연폭포 10년 만에 재창조
“소통은 머무르는 것…
관객에게 영향 주는 게 중요”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비 내리는 창가에서 서리가 낀다. 쓱쓱 지워지더니 창 밖에 있는 아몬드나무가 얼굴을 내민다. 사막처럼 사막하고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꽃봉오리가 생겼다. 한 잎, 두 잎 꽃잎이 펴지고 만개한 꽃잎은 한들거린다. 춤추는 아몬드나무 뒤로 맑은 달이 떠오르고, 잔잔한 파도가 넘실거린다.

눈과 귀를 자극해 살아 움직이는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나무(Almond Blossom)’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작가의 작품이다.

디지털 기술과 동서양 고전을 절묘하게 접목시킨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는 이이남 작가는 현재 세계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통해 현대 미술계의 새로운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수동적인 작품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변형했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도구를 사용해 새로운 시각을 표현했는지에 대한 여부다.

그의 작품은 원작이 가진 움직임을 갱신(更新)하는 데 의미가 있다. 작품 자체가 재생(再生)하는 것이다. 그는 정지돼 있는 것을 생명력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는 작품으로 만든다. 디지털이라는 힘을 빌려 허구를 실체처럼 만들었다.

▲ 연속 촬영한 ‘2017 박연폭포’ ⓒ천지일보(뉴스천지)

여타 유명하고 예술성이 높게 평가받는 원작들은 그 자체로 고정된 관념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관념은 너무나도 익숙해 진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가의 손을 거치면 모두 깨져버린다.

시간의 흐름을 그려낸 이 작가의 미디어아트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을 통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감상할 수 있지만 입자가 고운 커다란 화면에 생동감 넘치는 음향을 직접 듣고, 보는 전시만 못하다.

‘제2의 백남준’이라고 불리며 미디어 아트의 세계적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이이남 작가의 전시가 서울 용산구 카라스 갤러리(Kara's Gallery)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2017 박연폭포’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에드워드호퍼-밤샘하는 사람들’ 등 모두 8점이다. 작품 수는 적지만 느껴지는 아우라가 갤러리를 꽉 채운다.

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한국 미술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이이남 작가를 지난 7일 카라스갤러리에서 만나 작품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 작품은 디지털이라는 환경에서 조작되고 조합되면서 가상의 이미지가 모여서 하나의 사실을 만들어 내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닌 이미지들이 조합돼서 마치 하나의 사실, 그게 진짜인 것처럼 이야기를 가지고 가는 거죠. 디지털 기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용하는 거죠. 미디어라는 틀 안에서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눈물’ ⓒ천지일보(뉴스천지)

이 작가는 미디어라는 재료로 원작에 생기를 부여한다. 익숙한 그림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관람자는 “우와”하며 감탄을 자아낸다. 러닝타임 동안 관람객은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다른 예술작품처럼 작품에 담은 이야기를 어렵게 끌고 가지 않아 다음 프레임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가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은 ‘2017 박연 폭포(2017 Parkyeon Waterfall)’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진경산수인 정선의 ‘박연 폭포’는 실경을 즉물적으로 사생하는 것이 아니라 회화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임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금강전도’ ‘인왕제색도’와 함께 겸재의 3대 명작으로 손꼽힌다.

미디어 아티스트가 된 이 작가는 데뷔 초 대중에게 관심을 받지 못했다. 2007년 이 작가는 “대중을 생각 안 하고 내가 좋아서 작품을 해서 너무 외로웠다”며 “대중이 많이 아는 ‘박연 폭포’를 미디어 아트와 접목시키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예상은 성공적이었다. 시원하게 내리는 물줄기 소리와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만나 한 폭에 담겼다. 이 작가는 정선이 느꼈던 천지지미(天地之美)를 시뮬라크르로 재해석해 디지털 속의 가상현실의 공간으로 다시 생생하게 드러냈다.

10년이 지난 올해 또 다른 ‘박연 폭포’를 만들었다. 원작의 이미지를 공수해 석양과 무지개, 번개, 구름을 추가해 다른 해석을 내놨다. 한껏 풍요로워졌다.

▲ 이이남 작가, 배카라 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이렇듯 이 작가는 관람객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소통은 머무르는 것이다. 머무르고 아무리 잘 만들어도 지나친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이 든다”며 “작품을 통해서 관람자들이 작품 속으로 들어가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영향을 끼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밌는 이야기를 발견함으로써 웃기도 하고, 감동도 받을 수 있다”며 “편안함을 느낄 수도, 심각하게 사회문제를 느낄 수도 있다. 공감할 수 있는 점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카라스 갤러리 배카라 관장은 KBS에 탤런트로 특채되어 연기활동과 화장품 모델 활동을 하다가 뉴욕으로 이민을 가게 된 후 뉴욕에서 갤러리 큐레이터로 시작해 패션, 인테리어, 디스플레이 등 모든 부문을 섭렵하며 한국을 오가면서 활동의 폭을 넓혀 왔다.

국내에서는 공중파 방송에서 3년 간 문화예술 분야 전문 MC로도 활약하였고, 러브하우스에 출연해 인테리어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배카라 관장은 “이이남 작가의 전시 ‘닿음’은 예술 작품 속에 현대의 숨결과 맥박을 불어넣어 함께 공감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접근했다”며 “닿음은 작가․작품․관객과의 접촉이며 교감이다. 이는 가상공간에서의 회화성․가시성․환영성을 근거로 인간 내면의 흐름을 부드러운 촉수로 터치해 이끌어내려는 긍정적인 예술적 제스춰(gesture)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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