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옹기를 들고 미소짓고 있는 이현배 장인 ⓒ천지일보(뉴스천지)

[인터뷰-이현배 옹기장]

600여점 작품 한자리에 공개
항아리·솥
·등잔 등 생활품으로
식문화의 핵심 ‘장’… 장독 이용

우리 발효식품 최적의 저장고
기존 것 재해석한 생활 속 옹기
옹기밥상, 새 방식으로 제안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옹기는 역시 장독입니다. 저는 장독을 한없이 짓고 싶습니다.”

옹기를 만들어 온 이현배(55, 남) 장인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지난 26년간 전통방식으로 옹기를 제작한 이 장인. 그의 옹기 사랑은 작품이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지난해 말부터 오는 26일까지 서울 관악구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 전시실에서 열리는 ‘오늘의 옹기: 이현배’전.

이곳에는 그의 작품 600여점이 전시돼 있었다. 전라북도 진안에 위치한 작업장에서 만들어져 이곳에 전시된 옹기들은 전통미를 맘껏 뽐냈다. 게다가 세련미까지 지녔으니, 과연 우리가 알던 그 옹기인가 싶었다.

사실 옹기는 청자나 백자보다 소박해 미적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장인은 옹기에 주목했다. 옹기가 바로 우리 삶이기 때문.

옹기는 5000년 역사를 지닌 한국의 전통 생활 용기다. 신석기 시대 이래로 흙을 빚어 그대로 구워 만든 ‘질그릇’과 삼국시대부터 잿물을 입혀 조선시대에 완성된 ‘오지그릇’을 총칭해 옹기라 부른다. 미세한 가공이 많아 ‘숨 쉬는 그릇’이라고도 한다. 방부성도 탁월하다.

▲ 이현배 장인의 작품인 ‘옹알’ ⓒ천지일보(뉴스천지)

“옹기는 크기에 따라 독, 항아리, 단지로 불립니다. ‘알단지’는 작은 옹기를 말하죠. 손마디 크기의 작은 알단지는 밭고랑에 뿌린 씨앗의 모양을 닮아 생(生)을 의미합니다.”

1층 전시실에서는 삶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국인 곁에 있던 옹기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탄생을 은은하게 보여주는 ‘옹알’, 시신을 담는 ‘옹관’은 다시금 삶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 장인의 메시지가 전해진 걸까. 전시실을 오가는 이들은 옹알, 옹관을 보느냐 한동안 제 자리에 머물렀다.

♦장독 중심으로 옹기 파생돼

옹기의 종류는 꽤 많다. 곡식과 액체를 저장하는 항아리(독)는 물론, 밥 짓는 솥, 탕을 끓이던 뚝배기, 술을 증류시키던 소줏고리, 액체를 나르던 장군, 어두움을 밝히던 등잔, 숯을 피우던 화덕, 연기를 빼던 굴뚝, 지붕에 얹는 기와를 비롯해 모기를 쫓고 문어를 잡는 통도 있다. 한반도 곳곳에서 다양하게 민간생활품으로 사용돼 온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장인은 “모든 옹기의 중심은 장독”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시품은 옹기를 중심으로 파생된 모양으로 비치했다.

▲ 이현배 장인의 작품인 ‘옹놈’ ⓒ천지일보(뉴스천지)

“발효식품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중국은 불, 일본은 칼, 한국은 장으로 식문화를 다스린다고 합니다. 옹기는 발효과정에 쾌적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옹기는 장독을 중심으로 파생됩니다.”

예로부터 장독은 각 지역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지표이자, 장을 담그면 발효가 잘되고 썩지 않아 우리나라 고유 발효식품에 최적인 저장고였다. 뜰 한편에 모아 둔 장독은 안주인의 솜씨와 살림 규모를 대변했다. 가정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소원을 빌던 장소이기도 했다. 이런 장독을 이 장인은 주목했다.

◆생활 속 옹기 개발 힘써

장인은 기존의 옹기 형태를 새롭게 재해석해 오고 있다. 생활 속에서 쓰이는 현대의 일상용품 중 ‘옹기적’인 요소를 갖고 태어난 대상을 찾아 옹기로 만드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 함석 재떨이에서 착안한 사각옹기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사각옹기는 물건을 넣거나, 음식을 넣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 이현배 장인의 작품인 ‘한상차림’ ⓒ천지일보(뉴스천지)

곤쟁이젓 독의 현대적 원통 조형미를 이용해 쌀독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키다리 화분도 멋스러운 자태를 뽐냈다. 게다가 국수상, 서양식 상차림 등 오늘날 옹기밥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안하고 있다.

“본래 인류는 강한 그릇, 전보다 나은 그릇을 만드는 데 주목해 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목한 건 생활 속 옹기입니다. 무조건 강한 게 아니라, 물이 새지 않으면서 공기가 통하는 성질을 지닌 옹기입니다. 오랜 전통에서 차용해 현대에도 쓰고자 하는 겁니다.”

그것이 장인이 말하는 ‘옹기다운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옹기는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삶 속에서 옹기의 쓰임, 활용이 원활해져야 옹기 사용이 늘어납니다. 옹기는 전통과 현대를 잇기 요소이기에 쓰임이 더 원활해졌으면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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