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에 대한 기록 남기려 6년 취재 한 백애현 소장 인터뷰

▲ 백애현 한복 연구소 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백애현 한복 연구소 소장의 이력
2010. 국내 최초 수의 서적 <환생의 날개> 출간
2007. <백애현의 아름다운 우리 옷(기본편, 고급편-2권)>
2005. 한국표준모델 복식제시-노동부장관상
2003. 한복 지식인 선정-행정자치부
2002. 전통한복 기능인 제1호 선정
2001. 월드미스유니버시티 한복 심사위원

[뉴스천지=이지영 기자] 바느질을 배우고 익히며 시작한 36년 한복 외길 인생. 지난 8일 ‘환생의 날개’라는 전통 수의(壽衣)에 관한 책을 펴낸 백애현(백애현 한복 연구소) 소장은 전통 혼례복과 평상복 그리고 전통 수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전통 복식 연구와 옷 짓기에 일생을 바쳐왔다.

우리의 전통 수의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삼베를 짜고 손수 수의를 만드는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분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그는 지난 6년 동안 우리의 전통 수의를 찾아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피땀 어린 노력이 새하얀 책자에 새겨지기까지의 그 여정을 직접 들어봤다.

Q.수의를 취재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엔 삼베를 짜는 방직법을 조사하다가 전국의 전통수의가 조금씩 다르다는 걸 발견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되겠단 다짐을 한 거죠.

수의는 삼베로 짓는다는 통념을 가지고 있지만, 수의를 삼베로 짓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부터였어요. 그 이전에는 수의를 비단이나 명주로 지어 입었습니다.

일본이 의도적으로 수의를 삼베로 짓게 한 것이었죠. 앞으로 젊은이들 의식이 바뀌어 삼베를 고집하지 않는 시기가 올 것이고 40년쯤 뒤면 전국의 전통수의는 자취를 감출 거란 생각이 듭니다.

수의에 대한 참고할 문헌이나 자료도 거의 없어요. 8년 전에 수의 칼럼을 쓰면서 애를 먹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수의를 취재한 내용이 책으로 완성되기까지 6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수의는 절대 남에게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생의 마지막 의복인 만큼 귀한 것이기도 하구요. 이 귀한 자료를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무모한 도전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죠.

관할 구청이나 군청을 통해 미리 요청해서 힘이 닿는 만큼 어르신들을 설득했지만, 속설 때문인지 끝까지 보여주시지 않은 곳도 있어요.

강화도 지역은 4년 만에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로는 다 설명을 못합니다. 어르신 한 분 설득해서 수의를 보고 나오는 길이면 진이 다 빠져서 가슴이 터져버릴 지경이었어요.

수의를 잘 보여주시던 할머니도 바깥어르신이 와서 수의 보여준다고 호통을 치고 나면 표정이 금세 굳어지셨죠.

저희 일행도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 된 건 말할 것도 없구요. 속설 때문에 귀한 자료를 다 남기지 못하는 부분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Q.수의를 취재하면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요.

▲ 작품 수의 ⓒ천지일보(뉴스천지)
사실 저도 수의를 취재하면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집에 불을 끄고 지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무서웠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귀중한 작업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어느 날은 일부러 집에 불을 다 꺼버리고 수의 옷을 작업하면서 ‘귀신아, 잡아먹을 테면 잡아먹어봐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생각했더니 오히려 공포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수의는 사람이 죽어서 입는 옷이기 때문에 공포스럽게 느껴지죠.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만나 본 어르신들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수의를 입고 저승에 가서 시집을 간다고 생각하죠.

수의를 관찰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시의 양반가 할머니는 수의의 겉옷으로 시집올 때 입었던 장삼의 치수를 늘려서 준비하셨죠.

그것은 저 세상에서 더 높은 신분으로 살고자 하는 염원이기도 하고 ‘다시 시집을 가기 위한 준비’라고도 합니다.

저승에서 혼례를 치른다는 관념으로 혼백(魂魄)을 준비하거나 족두리와 폐백까지 준비하는 곳도 있어요. 12문을 지나 가시덤불을 헤치는 긴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고 손 주머니와 여비까지 챙겨두시기도 합니다.

부모님을 위해 자식이 수의를 미리 준비해 두면 더 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는데요. 자식이 태어날 때 부모님이 옷을 예쁘게 장만했던 것처럼 수의는 자식들이 부모님을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Q.수의를 취재하면서 느끼신 점을 말씀해 주세요.

장례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엔 덜 하지만 예전에는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뭐라도 묻혀 온 사람처럼 온 몸을 씻고 꺼림직 해 했거든요. 너와 내가 다 태어나고 죽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면 먼저 간 고인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내세의 행복을 편안히 빌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의도 상조회사에서 추천하는 삼베만 고집할 필요가 없어요. 옛날에는 장례기간이 길어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날까봐 천으로 묶고 이불로 싸매고 했었지만, 요즘은 기간이 짧고 보관도 잘 돼서 그럴 필요가 없죠. 사람이 입는 가장 마지막 단계의 예복이라면 얼마든지 아름답게 지어 입어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Q.수의 연구는 이제 마무리 지으실 건가요?

더 쉽지 않은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중ㆍ성씨별 수의를 취재해 볼까 합니다.

예전에 대전 중구청에서 실시하는 ‘효 뿌리 찾기 행사’에서 퇴계 이황의 14대손을 만났습니다. 수의를 보여주실 수 있겠냐고 부탁을 드렸는데 거절하셨죠.

아마 이번 ‘환생의 날개’ 책보다 더 까다롭고 어려운 여정이 될 듯합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이미 발을 내딘 제가 낫지 않겠습니까? 제 개인의 일이라 생각지 마시고 더욱 가치 있는 책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수의를 절대 보여주면 안 된다는 속설 때문에 귀중한 자료가 그냥 땅에 묻히지 않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의는 우리의 복식인 한복의 마지막 단계이고 돌아가시는 분들에게 최고의 예의를 갖추는 의복입니다. 그저 단순히 통과 의례상 장례용품으로 취급한다면 수의문화 계승과 보존은 어려울 것입니다.

수의(壽衣)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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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壽衣)는 사람이 죽어 염습(殮襲)할 때 시신에게 입히는 옷이다. 수의는 상고시대부터 있어왔으나 보통은 주자의 학설을 수집하여 만든 책인 ‘주자가례’의 절차에 맞춰 계급과 신분, 빈부의 차이에 따라 그 형태에 차이가 있었다. 수의는 각자의 신분에 따라 생전에 입던 예복과 같이 만들며 부모의 환갑 진갑이 가까워지면 가정형편에 따라 수의를 지어두는 것이 상례이다. 또한 4년마다 돌아오는 윤달에 수의를 짓는 관습이 있다. 윤달은 공달이라 해서 죽는 사람의 평안을 축복하는 뜻에서 지어졌고 그 풍습은 계속되고 있다. 부모의 수의를 만들 때는 효를 다하기 위해 윤달 가운데 길일을 택할 뿐만 아니라 팔자 좋고 장수한 노인들을 모셔다가 바느질을 했는데, 솔기 중간에 실매듭을 짓지 않게 해서 저승길 갈 때 걸리지 않고 편안하게 가기를 염원했다. 또한 치수나 폭수에 있어서도 짝수로 하지 않고 홀수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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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염색한 옷감으로 만든 한복 소품.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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