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관동팔경 으뜸 ‘경포대’와 역사적 명소 <선교장>

 

 

▲ 안방 마님과 여인들의 거처였던 선교장 안채주옥, 해송들과 함께 나지막이 앉은 뒷산이 선조들의 겸손함과 고결한 정신을 말해주는 듯하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뉴스천지=박미혜 기자] 사람이 만들었는가 하늘이 덮어줬는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옥 지붕은 처음부터 자연의 일부였던 것처럼 뒷산의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조선말기 사대부 저택의 전형으로 알려진 선교장은 경포호수가 메워지기 전만해도 배가 드나들었다하여 배다리집이라 했다. 효령대군 11대손 이내번이 지었고 그 후손들이 10대에 걸쳐 현재까지 거주하며 전통과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선교장은 원래 아흔아홉 칸이었으나 화재로 소실돼 안채주옥, 열화당, 활래정, 동·서별당, 행랑채 등 84칸이 현존하고 있다. 또 조선후기 사용했던 생활용구나 예술품, 의상 등 8000여 점의 유물도 함께 보관하고 있다.

 

 

 

 

▲ 새들은 연못가 숲에서 자고,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는 시구가 적힌 선교장 월하문. ⓒ천지일보(뉴스천지)

선교장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좌우 기둥이 한 줄로 된 가로 2m 남짓한 문이 보인다.

선교장의 본 대문이다. 문 크기가 규모에 비해 작은 것도 놀랍지만 기둥에 쓰여있는 5언 시의 의미는 더 놀랍다.

오른쪽 기둥엔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새들은 연못가의 나무숲으로 자러 들어가고 왼쪽엔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 스님은 잠자리를 찾아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는 의미의 글귀다.

이 오언주련은 ‘문장을 다듬는다’는 의미인 퇴고의 유래를 낳은 당나라 시인 가도의 시구 중 일부이다.
해가 지고 달이 뜬 밤에 하루 묵고 갈 거처를 찾는 나그네가 으리으리한 저택을 보고 아서라 발길을 돌릴까싶어 대문을 작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 부담 없이 문을 두드려 하룻밤 묵고 가라고 가도의 시구를 문에 걸어뒀다고 하니 집 주인의 너그러운 성품과 사려 깊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월하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물이 끊임없이 흘러온다는 뜻의 활래정이 있고 이 정자를 지나면 두 문이 나란히 보이는데 각각 남자와 여자가 전용으로 드나들던 문이라고 한다.

선교장의 많은 집들 중엔 의미 없이, 뜻 없이 지어진 집이 한 채도 없다. 주변과의 조화뿐 아니라 사람의 동선을 생각하며 설계했고 계절에 따른 변화까지도 고려했다. 또 집의 각도까지 세밀히 맞춰 지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실용과 멋, 풍류를 아는 우리네 선조의 건축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취재= 박미혜 기자 mee@newscj.com  
사진= 최성애 기자 tip@newscj.com
영상= 손성환 기자 cjssh@newscj.com  
동영상= newsj.com(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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