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농민들은 닭이나 소를 자식 키우는 심정으로 키운다.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들여 키운 닭과 오리를 땅에 묻을 때 그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지금까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습격’으로 땅에 묻은 닭과 오리, 메추리가 지난 8일 기준으로 3100만 마리가 넘었다. 지난 2014년 살처분 규모의 배가 넘는다. 산란계는 전체의 33%가 살처분됐다. 제주와 경북을 빼고 온 나라에 퍼졌다. 역대 최악이다. 

닭과 오리가 무슨 죈가? 닭과 오리의 생명권을 빼앗은 건 인간이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닭과 오리, 메추리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 이처럼 많은 닭과 오리를 땅에 묻은 농민들의 가슴은 얼마나 타들어 가겠는가. 생계 타격도 문제지만 켜켜이 쌓여가는 상실감을 무엇으로 채운단 말인가. 어제까지 함께 ‘동고동락’했던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 죽임을 당하는 걸 보고 누구인들 허망하지 않을 사람 있겠는가.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AI 사태가 커진 데는 국가 컨트롤타워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 AI가 확진된 시기는 지난 11월 11일이다. AI 발생시점이 박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불신임을 당하는 시점이긴 하지만 그래도 재임하고 있었던 건 분명하니까 재난에 대한 컨트롤타워 역할은 했어야 했다. 자신이 못하면 국무총리에게 코치라도 해야 했다. 그런데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 또한 박 대통령이나 마찬가지로 AI에 무관심했다. 황교안 총리는 농장에서 확진이 된 지 26일이 지나서야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한다. 이미 1000만 마리나 살처분되는 시점이다. 최고의 상태인 ‘심각 단계’로 격상하는 데 무려 35일이 걸린다. 주무부처인 농림부 장관은 국회에 나와 철새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일어나고 있는 일과성 사건처럼 설명했고 확산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말까지 했다. 태도가 이만저만 안이한 게 아니다. 그 대통령에 그 국무총리, 그 장관이다. 한국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AI가 발생한 당일 아베 총리가 나서서 위기관리센터를 만들고 ‘심각 단계’로 규정하면서 신속 대처한 결과 90만 마리 살처분으로 마무리한 일본과 크게 대조된다.  

재난이 발생하면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생명을 살리고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나며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초헌법적인 대통령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역할 없이 대형 재난을 수습하고 극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세월호, 메르스 참사를 보면 컨트롤타워로서 대통령이 부재할 때 어떤 사태로 발전하는지 잘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 직후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은 ‘청와대는 세월호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을 위한 변명인 동시에 자신을 위한 변명이었지만 이 말은 대통령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기도 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기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막는 동시에 재난이 발생할 경우 지도력을 발휘함으로써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신속하게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대통령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박 대통령은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나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면서 책임회피하고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까 봐 진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이렇게 하라고 국민들이 권력을 위임한 게 아니다. 위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위임받은 자가 위임의 목적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국민은 ‘권력 회수 작업’을 한다. 2016년 국민은 국민촛불을 통해 저항권을 행사해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회수하는 위대한 결단을 했다.

이번 AI 참사는 인재다. 세월호 사고, 메르스 사건, AI 사건은 대통령과 정부가 앞장서서 인명을 구조하고 전염의 확산을 막았다면 참사로 변화되지 않았다. 제대로 적시에 대처하지 않음으로써 사고를 참사로 발전시킨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에서 본 것처럼 ‘윗대가리는 책임을 다 피하고 아랫사람 몇 치고 마무리’했다. 지금까지 참사가 날 때마다 반복된 패턴이다. 큰 참사가 나면 재탕, 삼탕, 심지어 사탕의 실효성 없는 ‘대책’을 내어 놓고 새로운 대책인 양 열심히 퍼포먼스를 한다. 사건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마녀사냥 대상을 찾는다. 그렇게 해도 국민의 비판이 거세면 국정쇄신 어쩌고 하면서 장관 몇 자른다. 바뀐 장관이 그 나물에 그 밥이고 낙하산 일색이거거나 지역 연고나 학맥을 타고 내려온 인물들이다. 때로 최순실 같은 백을 써서 내려오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도로아미타불이다. 무엇 하나 변하지 않고 또 다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반세기 동안 계속된 악순환을 끊어내고 선순환 하는 방향으로 패턴을 바꿔야 한다. ‘바꾸지 않으면 다 같이 죽는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시스템을 바꾸어 내고 생명안전 중심의 가치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촛불정국 속에 다가온 ‘붉은 닭의 해 정유년’을 맞아 제대로 바꾸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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