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국체육대학 초빙교수

대학원 강의를 맡고있는 한국체대 캠퍼스 구석 구석을 둘러보았다. 한체대 4년생인 모태범, 이승훈, 이상화 등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 3총사’가 화려하게 개선한 직후인 이달초였다. 평상시 강의실만 왔다갔다 하다가 큰맘먹고 학교 전체를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금메달의 산실이 된 학교의 속내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금메달의 산실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해 보였다.

서울 송파구 오륜동 올림픽공원 안에 자리잡은 국립대학인 한국체대는 대학교치고는 규모가 아주 작은 편이다. 9만평방미터 크기의 학교를 돌아보는데 15여분이면 충분했다. 서울의 종합대학교들이 셔틀버스를 타고 한 바퀴를 둘러보려면 20여분 걸리는 것과 비교해보면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보다 조금 큰 규모라고 보면 된다.

학생들의 강의실동인 체육과학관, 훈련장인 오륜관과 필승관, 기숙사인 생활관, 실내 빙상장과 수영장, 운동장, 테니스장, 하키장 등이 들어서 있다. ‘금메달의 메카’로 엄청난 시설을 갖췄을 것으로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 직전 사회주의 국가인 세계스포츠강국 동독을 취재갔을 때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했던 동독의 엘리트스포츠 산실 라이프찌히 체육대학도 지금의 한체대와 전반적인 시설과 훈련여건이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한체대의 살림살이도 금메달 산실답지 않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장인 태릉선수촌과 비교한다면 먹고 자는 문제에서부터 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학생 선수들의 하루 급식비는 8500원으로 태릉선수촌 2만 6000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숙소도 여러 명이 섞여 자는 형태에서 편안함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호텔방 수준인 태릉선수촌의 잠자리에 크게 못 미친다.

빠듯한 학교 예산은 선수육성에 큰 어려움을 준다. 지난해 한체대 예산은 국고지원금 220억 원과 대학 자체 예산인 145억 원을 포함해 총 365억 원이었으나 시설비와 인건비 등을 제외한 기본 경기는 46억 원에 불과했다. 외부지원금으로 국민체육진흥공단 3억 원, 중앙경기단체 지원금 2억 원 정도를 받고 있는데 이 돈으로 선수들의 전지훈련을 보내고 대회에도 출전했다. 따라서 최첨단 훈련과 장비 등에 들어야할 경비를 부담하기가 버거웠다.

김종욱 총장은 “이번 밴쿠버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딴 것은 기적같은 일이었다”며 “학교지원도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 값진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피땀어린 훈련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체대 관계자들은 고려대가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소속선수인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 김연아를 포함한 메달리스트들을 모델로 한 대학 홍보광고를 일간지에 낸 것을 부러워했다. 3명의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한체대는 무엇보다도 학교 홍보를 하고 싶었지만 빈약한 예산문제로 인해 부득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체대는 2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역도의 사재혁, 태권도의 차동민이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일간지에 전면 광고를 낸 적이 있었는데 최고경영자 과정에 다니고 있던 한 동문 기업인이 1억 원의 사비를 쾌척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체대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가 광복이후 첫 금메달을 획득한 직후 정동구 레슬링 코치가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비인기종목과 엘리트 선수 육성을 위해서 국가에서 체육대학을 설립해야 한다고 건의해 탄생한 엘리트스포츠의 사관학교로 지난 30여년간 화려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까지 역대 동ㆍ하계 올림픽 금메달의 30%(금 28개, 은 28개, 동 20개)를 재학생 또는 졸업생이 따내며 한국체육이 세계 스포츠 강국의 반열로 올라서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같이 화려한 올림픽 성적의 뒤에서는 먹고 자는 데 불편함을 느끼고 낡고 부족한 시설에서 묵묵히 훈련에 정진한 선수들과 학교 당국의 힘겨운 노력이 있었다.

한체대 정문 입구에는 사상 첫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을 따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태범, 이승훈, 이상화의 대형 축하 현수막이 걸려있다. 한체대에 대형 축하 현수막이 계속 내걸리기 위해서는 정책당국의 많은 예산지원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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