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잎(松葉) 이윤구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월남 이상재 선생님의 삶과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한마음(一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친필 단구(短句) 가운데 대표적인 유품은 ‘일심상조불언중(一心相照不言中)’이 아닐까 합니다. 말이 없어도 한마음은 서로 밝게 합일한다는 깊은 뜻입니다.

전택부 님은 ‘일심은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준말’이라고 믿었습니다. ‘한 조각 붉은 마음’은 하나뿐인 참되고, 불변하고, 하늘(한울)처럼 높고, 넓고, 큰 마음(心)입니다. ‘心’은 심장을 그린 글씨입니다. 그래서 붉게 타면서 뜨겁게 생동하며 삶의 동력이 되는 것이어서 월남 서생은 그 무한하고 무진한 한마음을 좋아하셨나 봅니다. 아니 한마음의 화신으로 승화하셨습니다.

선생과 같은 때의 인물들 가운데는 이완용(1858~1926) 같은 이도 있었습니다. 친미, 친러, 친일로 자리를 바꾸면서 나라를 패망케 하는 동안 마음은 둘로 셋으로 깨어져 버렸습니다. 월남은 그런 재주가 없었습니다. 우직하게 한마음 자리를 지키다 가셨습니다. 한 나라와 한겨레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외교관 신분으로 있을 때나 일본으로 공식여행단의 일원으로 갔을 때나 중국으로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머물 때에나 한복차림을 고집하셨습니다. 월남은 너무도 너무나도 조선 사람이고 한민족의 아들이셨습니다. 서양 식탁에 앉으셔도 꼭 우리 수저로 음식을 드시기를 즐기셨습니다. 한마음이 그렇게 살기를 엄히 명했다고 봅니다.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 님이 1970년대 초에 월남 선생님의 글(一心相照不言中)을 처음보고 서슴지 않고 “이건 원효의 사상이군! 이건 현대판 원효야!”라고 말했습니다. 원효의 일심정신(一心精神)과 월남의 한마음 정신은 시대와 종교는 달랐지만, 반만년 백의민족의 한(恨), 하늘처럼 높은 조선인의 심혼입니다. 큰(韓)마음입니다. 불심(佛心), 여래장(如來藏), 법신(法身)의 마음이 원효와 월남의 깊은 혼 속에 다시 창생되었다 할 것입니다.

월남 선생님의 ‘한마음’은 깜깜하고 악취로 가득한 감방에서 아주 차원이 높은 거듭남을 체험합니다. 기독교 성경 중 요한이 전한 복음을 30번이나 정독하며 우주의 삼라만상을 꿰뚫는 생명의 넋을 찾습니다. 망해버린 나라도 쓰러진 겨레도 갇혀 있는 자신도 죽지 않고 ‘영원히 죽지 아니 하더라’는 부활과 생명의 구세주를 따르는 택한 백성이 될 것임을 월남은 알게 되고 그 마음으로 외길 일생을 살다 가셨습니다.

월남께서 기독교로 개종하신 후 그의 한마음은 거의 외곬으로 집중되었습니다. 그것은 젊고 푸르고 불덩어리처럼 끓는 청년정신이었습니다. 쓰러져가는 나라를 부둥켜안고 몸부림치는 것은 너무 큰 한계가 있다고 확신하셨습니다. 전통적 종교에도 큰 희망을 찾기가 힘드셨습니다. 월남선생님의 정열을 쏟을 곳이 젊은이를 바로 기르는 데 집중되었습니다.

‘청년이여’라는 글을 읽으면 오늘도 우리 가슴이 뜁니다. “…천하만사가 다 내 마음의 하나로 인하여 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라고 외치셨습니다. 그 하나의 마음이 나라도 겨레도 누리도 살릴 수가 있다고 믿으시고 그렇게 젊게 사셨습니다.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 님은 월남 선생님을 추모하는 글에서 “이 신념 없고 용기 없고 희망 없는 세대에 신념과 용기와 희망의 순결한 인(人)의 전형(典型)으로 살 규범을 우리에게 주는 것만으로도 옹은 국보요, 우리 청년의 선생이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월남의 한마음은 21세기의 한반도에 되살아나야 합니다. 한민족의 시들어가는 혼을 다시 생기로 꽉 차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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