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궁궐’ 김기철 화백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인터뷰 | ‘우리궁궐’ 김기철 화백
숭례문 화재 이후 자료 찾아보며 궁궐 귀중함 알게 돼
긴 시간 연구… 궁궐마다의 느낌 찾아내는 게 중요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서양은 인위적으로 건축물에 자연을 담았다면, 우리는 자연에 건축물을 담았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자연미인’과 같습니다.”

‘우리궁궐’ 김기철(53) 화백은 우리나라 궁궐을 이같이 빗대어 설명했다. 궁궐만이 가진 아름다움. 그는 그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도 느끼길 바라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그의 말 속에는 그 따뜻한 진심이 녹아 있었다.

김 화백은 서울예고 미술과, 홍익대 서양화과, 홍익대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국미술협회 정회원으로 30여년간 활동하고 있다. 오랜 시간과 노력, 열정으로 만들어진 그의 그림체. 그는 손에 쥔 얇은 붓으로 마치 생명을 불어넣는 듯, 그림 속 궁궐을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그림체가 얼마나 정교한지 “컴퓨터로 한 거 아니에요?”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가만히 궁궐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교함에 한 번, 색감에 또 한 번 반하고 만다.

▲ 김기철 화백의 작품 ‘문과 담’. ⓒ천지일보(뉴스천지)

김 화백이 처음 궁궐을 그리기 시작한 건 언제일까.

“2008년 숭례문 화재사건이 발생했는데, 몇 개월간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마치 저에게 그려달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 관심을 두고 하나하나씩 자료를 찾기 시작했고, 우리 궁궐의 귀중함을 알게 됐다고 한다.

“궁궐을 그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게 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궁궐을 꼼꼼하게 보는 거죠.”

수원화성의 경우 그림을 위해 한 달 정도 현장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영감을 얻기도 했다고 한다.

사진 남기는 것도 중요했다. 궁궐에서 그림 그리는 게 불가능하므로,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 하지만 사진촬영이 불가능해 그림 그리는 데 애를 먹은 적도 있다고 김 화백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궁궐마다의 느낌을 찾는 것도 중요했다. “경복궁은 계획에 의해 잘 설계됐습니다. 창덕궁은 자연친화적으로 능선 따라, 바람 따라, 햇볕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창경궁은 약간 왜소합니다.”

이처럼 궁궐을 그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 책을 보며 연구해야 하고, 궁궐 속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했다. 그리고 따스한 햇볕을 쬐며, ‘살랑’이는 바람을 맞는 궁궐의 숨결을 느껴야 했다. 그 작업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김 화백이 궁궐을 그릴 수 있는 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김기철 화백의 작품 ‘담’. 실제 담을 보는 것처럼 입체감이 느껴진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어린 시절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사대부 기와집 지붕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 시절엔 거의 다 초가집이었죠. 사대부 집안은 부의 상징이자, 동경의 대상이어서 눈길이 더 갔습니다.”

특히 그는 국민이 우리 궁궐의 아름다움을 알길 바라고 또 바랐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은 아름다운 ‘궁’하면 유럽의 베르사유의 궁전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궁궐처럼 아름다운 곳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궁’이 600년이라는 긴 시간, 우리 옆에 너무 가까이 있어 그 가치를 모르고 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향후 김 화백은 전주성 등을 화폭으로 담고 싶다고 말했다. 또 몇 권의 ‘우리궁궐’ 책을 내 사람들에게 궁궐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진짜 우리 궁궐을 소중하고 귀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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