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20일 가수 김가인씨가 본지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미소 짓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아! 파로호’ 부르다 눈물 흘려
결혼 후에도 가수 꿈 포기 못해
‘줘’ ‘마지막카드’ 많은 사랑받아
노래실력 만큼이나 마음씨도 예뻐

[천지일보=박혜옥 기자] “‘두타연 아리랑’ ‘아! 파로호’ ‘양구에 오시면 십년이 젊어집니다’ 3곡을 불렀는데 노래가 다 좋아요. ‘두타연 아리랑’은 전국으로 불러도 상관이 없을 듯해요.”

주부가수 김가인씨에겐 요즘 하루하루가 설레고 행복하다. 강원도 양구군에서 군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자신이 부른 노래가 담긴 음반이 발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의 문턱에 이르는 지난 9월 20일 서울역 근처 카페에서 김가인씨를 만나 그의 노래 인생을 들어보았다.

이번 양구군과 함께한 음반 작업에 대해 김가인씨는 자신에겐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며 진중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양구군에선 이번 음반을 작곡, 작사한 홍성욱·이재준씨에게 해당 노래를 부를 가수의 선택권을 맡겼다. 배일호·하춘화·한혜진 등 실력파 가수들을 제자로 둔 홍성욱 작곡가와 이재준 작사가가 양구군 노래를 부를 가수로 선택한 이가 바로 김가인씨였다.

홍 작곡가가 그를 택한 것은 탁월한 노래 실력뿐 아니라 그의 착한 심성 때문이다.

김가인씨는 양구군 홍보 노래 중 ‘아! 파로호’를 부르면서는 6.25전쟁 때 죽은 어린 군인들이 생각나서 가슴이 메어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노래하기 전 직접 파로호에 가보고 위로의 술도 뿌려 주고 절도 하고 왔다는 그는 전쟁 때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위로의 묵념을 올렸다.

홍 작곡가는 김가인씨가 가수 이미자씨 노래부터 어떤 가요도 원가수보다 감칠 나게 소화한다고 추켜세울 정도로 그의 노래 실력을 인정했다.

“좋은 인연으로 양구군 노래를 하게 돼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길게 지켜보신 결과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가수가 되는 게 보답이겠지요.”

김가인씨는 자신을 선택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결코 후회되지 않도록 성공으로 보답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어 그는 “(홍 작곡가님이) 원래 칭찬에 인색하신 분인데, 이번 음반을 작업하고 나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어요”라며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가수의 꿈을 그렇게 키워갔다

김가인씨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하고 좋아했다.

조용한 성격의 그는 노래를 통해 자신을 어필하며 자신감을 키웠다. 그렇게 가수란 꿈을 키워왔던 것.

하지만 생각만큼 가수가 되는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가수가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친구와 함께 무작정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가 음반 관계자를 만난 적도 있다.

이때 노래만 잘해서는 가수가 될 수 없다는 현실도 직면했다. 하지만 가수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결혼 후에도 그 열망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언젠가는 도전해 봐야지’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중 1983년 대전 MBC 신인가요경연대회에 출전하게 됐고, 입상하면서 가요계 데뷔의 길을 열게 됐다.

그 후 각종 가요콩쿨대회, KBS 주부가요스타, SBS 스타에 도전한다 등에서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2007년에는 배호가요제에 입상해 옴니버스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옴니버스 음반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전부터 간직해 온 ‘내 노래를 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이 생겨 홍성욱 작곡가를 찾아가 곡을 부탁했다. 때마침 작사가와 곡 작업 중이었던 홍 작곡가가 그에게 3곡을 줬다.

이렇게 늘 꿈에 그리던 ‘김가인’이라는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적힌 음반인 독집앨범 타이틀 ‘줘’가 2008년에 발표됐다. 이어 2013년엔 독집앨범 ‘마지막카드’를 발표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음반이 나온 그 당시를 회상하며 김씨는 “더없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나서 얻은 값진 결과였다.

한때 그는 IMF시절 남편의 사업 실패로 거리로 나서야 할 정도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노래를 잠시 내려놔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잠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가족이 흩어져 살았는데 그래도 애들이 착해서 잘 견디어 주고 남편도 빨리 적응해서 취직도 하고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됐어요. 가족들한테 감사해요.”

그는 그 당시 기울어진 가정을 살리기 위해 보험 일을 시작하게 됐고, 현재까지 10년 넘게 해오고 있다. 현재 주부가수로, 또 보험사로 열심히 살고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김가인씨에겐 그때 일을 통해 현재 아내로서 엄마로서 가수로서 더 단단해진 모습이다.

그는 노래실력 만큼이나 마음씨가 곱다. 김가인씨는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도 각종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열성을 보이고 있다.

각종 행사나 가요제, 연말연시 사회봉사단체 위문잔치에 주로 초대되는 그는 자신의 독집 ‘마지막카드’로 뒤늦은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김가인씨는 말했다. “노래는 저의 동반자이자 제 삶이라고 생각해요. ‘저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고 노래를 정말 잘하는 가수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노래로 상대방 마음을 감동케 하는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누구나) 꿈이 있잖아요. 이룰 수 있으면 꼭 도전해서 이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공교롭게 김가인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음반이 방금 나왔대요!”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꿈을 잃지 않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한줄기 빛을 발견했다.

앞으로 그가 걷는 길이 꽃길이기를 기대해 본다. 강원도 양구군에 가면 그의 노래가 거리에 울려 퍼지기를,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팬들이 넘쳐 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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