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말> 대본집을 출간한 노희경 작가가 포토타임에서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들이 사는 세상> 이후 두 번째 대본집 <거짓말> 출간

[뉴스천지=서영은 기자] “나는 마니아 드라마를 쓸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나도 시청률이 잘 나왔으면 좋겠다. 사는 사람이 명품이라고 생각해야지 내가 명품드라마라고 하는 것도 웃기다. ‘노희경표’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매일 새로운 것을 쓰는데 매일 똑같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좋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은 씹히고 싶기도 하다”

‘노희경표 드라마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그마한 체구에 시원시원한 말투. ‘짠하다’는 말을 정말 짠하게 잘하는, 진짜 사람 냄새나는 작가를 아주 오랜만에 만난 듯하다.

지난달 말에 만난 노희경 작가는 1998년 3월에 방영된 20부작 드라마 <거짓말> 대본집을 새롭게 포장해 들고 나왔다. 2008년 10월 송혜교와 현빈이 출연한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대본집 출간 이후 두 번째 작품이다.

이번에 출간된 대본집 <거짓말>이 드라마로 방영될 당시 배우 배종옥, 이성재, 유호정이 주연을 맡으며 최초 ‘마니아 드라마’로 평가받았다. 이후 드라마 사상 최초로 팬 카페가 만들어져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새로운 팬들이 모이고 있다.

노 작가는 “처음에는 팬들이 오래갈 것 같지 않았는데 지금은 너무 고맙다. 실제로 모인 사람들도 그렇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동호회 가입하는 것이 신기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도 성격이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 짠하다”고 말했다.

드라마가 끝난 지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짠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노 작가는 처음 <거짓말>을 썼을 때와 지금의 감정을 “묘하다. 짠하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이것을 보면 쓰던 당시로 돌아가게 된다”면서 “그 때 배우들이 너무 울어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했었다. 감정지문이 이렇게 많은 대본은 처음 봤을 거다. 배우들이 당황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며 10년 전 기분을 회상했다.

요즘 막장 드라마가 대세다. 그 가운데 노 작가의 작품은 명품드라마라는 평을 듣곤 한다. 노 작가는 “막장이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재밌다”면서 “순한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된장국 같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런 것을 계속 쓰는 것도 재주”라고 말했다.

글을 쓰는 모든 작가들의 고민은 바로 작품의 아이디어다. 노 작가는 “주변사람들이 모니터링하면서 ‘이건 재밌다’ ‘이건 좋다’라고 하는 데이터들을 흘려듣지 않고 모은다. ‘그들이 사는 세상’의 경우 ‘신선했다’는 반면 ‘정신이 없었다, 너무 전문적이었다. 호흡이 너무 빠르다’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럴 때 다음 작품엔 템포의 조절을 어떻게 할까를 고민한다”면서 “반성이 첫 번째 소스를 준다”고 말했다.

▲ <거짓말> 대본집 출간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노희경 작가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작가는 집을 짓듯이 글을 지어내는 사람”

최근 드라마를 보면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상당히 걱정스럽다”고 운을 뗀 노 작가는 “불과 2~30년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요즘은 80% 이상이 만화원작”이라며 “일본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라고 우려했다.

이어 “한류드라마의 힘은 창작인데 그것이 없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만화는 컷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류가 왜 일어났는지 고민하고 ‘작가’라는 이름에 맞게 집을 짓듯이 글을 지어내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후배들이 글을 잘 쓰니까 스스로를 믿었으면 좋겠다”고 격려하며 “소스는 10%이고 나머지는 재창작인데 10%를 위해 창작을 포기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의 작품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오는 게 좋다는 노희경 작가는 현재 세 자매와 젊은 엄마, 늙은 할머니가 만들어 내는 끈적한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

노 작가는 “이번 드라마는 신세대와 구세대가 어우러지는 노희경표 드라마가 될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를 쓸 때면 ‘문 씨 아저씨 앉아 있다’ ‘할머니 상추 뜯는다’ 같은 사소한 지문에도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쓸 수 있어서 좋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끈적하다. 기본적으로 엄마와 딸들의 얘기다. 얼마 전 형제들이 머리 뜯고 대판 싸우는 장면을 썼는데 좀 더 끈적하고 <꽃보다 아름다워> 냄새가 나는 작품이 될 것 같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그동안 노 작가의 작품 속에는 많은 캐릭터들이 소개됐다. 만들어진 캐릭터는 작가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어디에든 노 작가의 모습은 숨어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닮은 캐릭터로 “<내가 사는 이유>에서 입만 열면, 독하지만 귀여운 ‘욕쟁이 할머니’”를 꼽았다.

아직도 우려먹을 상처가 많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밝은 미소를 보인 노 작가의 모습에 누구에게도 볼 수 없는 열정이 비쳤다. 사랑과 우정, 믿음, 멜로, 불륜, 이별, 휴머니티를 담아낸 <거짓말> 대본집은 세상의 모든 사랑이 감추고 있는 ‘거짓말’ 속의 진실을 들여다보게 할 것이다.

“어쨌든 엔딩은 쓴다. 울며불며 간다. 왔다 갔다 해도 결국 종착역까지 가는 게 중요하니까. 내가 한 가지 믿는 것은 시청률이 나오든 안 나오든 엔딩은 어떻게든 쓴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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