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기약없는 천막생활.."전쟁보다 피해 심해"

(산티아고=연합뉴스) 지난달 27일 발생한 규모 8.8의 강진으로 칠레 태평양 연안 도시들이 초토화됐다.

최대 피해가 발생한 인구 20만의 칠레 제2 도시 남부 콘셉시온을 벗어나 4일 찾은 콘스티투시온, 트린체라, 일로카 등 태평양 연안 도시들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폐허가 돼있었다.

콘스티투시온으로 들어가는 도로 옆 야산은 쓰나미로 집을 잃은 주민들이 쳐놓은 천막으로 뒤덮였다. 여성들이 파도가 휩쓸고 간 집에서 간신히 건진 옷가지와 이불을 햇볕에 말리느라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가 하면, 남성들은 식수를 마련하기 위해 수도관을 뚫고 연결한 고무호스를 연신 빨아댔다.

바닷가에 접한 가옥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모조리 파괴됐다. 거센 파도에 밀려 뭍으로 올라와 가옥을 덮친 70t 선박이 쓰나미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쓰레기 악취가 진동하고 기중기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은 잔해를 뒤지며 남은 음식과 가재도구를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 뛰어다녔다.

주민 한 사람이 바닷가에서 100여m 떨어진 작은 섬을 가리켰다. 수십 가구가 모여 여름휴가의 마지막 주말을 즐기다 쓰나미로 몰살당한 현장이라고 했다.

콘스티투시온을 떠나 북쪽으로 난 해안도로를 달리자 멀리서 트린체라 시가 보였다. 그러나 엄청난 물살로 아스팔트가 찢겨져 나가 도로가 사라지는 바람에 더 이상 접근할 수가 없었다.

쓰나미의 기운이 여전히 남아있는 듯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를 보며 비포장 시골길을 한참 달려가자 일로카 시가 나타났다.

일로카 시 역시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관광객으로 북적였다는 방갈로와 상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주민들의 가옥도 성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졸지에 집을 잃은 주민들은 천막촌을 형성한 채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근 지역에서 보내준 헌 옷가지와 과일, 야채도 이들의 시름을 달래기에는 부족했다.

때마침 대통령 선거 출마 경력까지 있는 칠레의 유력 정치인 안드레스 살디바르(73) 상원의원이 천막촌을 찾았다.

살디바르 의원은 "현장을 둘러보니 전쟁터보다 피해가 훨씬 더 심한 것 같았다"면서 "식량, 식수, 의복 등 모든 것이 부족하고 전염병이 돌 가능성도 있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집을 마련하는 일도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한국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던 경험을 소개한 뒤 "전 세계가 칠레를 돕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도움을 준 세계 모든 국가에 감사한다"면서 "칠레 정부와 국민은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피해복구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주민들을 위로했다.

강진에 이은 쓰나미는 콘스티투시온, 트린체라, 일로카 뿐 아니라 칠란, 푸투, 중길라르, 라스 카냐스 등 다른 도시에서도 엄청난 피해를 초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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