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칠불을 제작 중인 오삼록 공예가. (제공: 오삼록 옻칠공예가)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자그마치 700년의 시간이 걸렸다. 너무 긴 기다림에 전승의 맥이 영원히 끊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원주옻칠문화진흥원 이사인 오삼록 옻칠공예가(54)의 집념 덕분일까. ‘건칠불(乾漆佛)’은 역사 속에서 잠들지 않고, 현시대에 선보이게 됐다. 찬란하던 불교문화의 맥이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건칠불이란

건칠불은 종이와 삼베로 만든 불상이다. 보통 종이나 삼베로 감싸고 옻칠을 입히는 과정을 반복한 뒤 단단히 반죽한 옻칠로 세부 표면을 마무리한다.

우리나라는 건칠불보단 깎아내며 조각한 ‘석불’이나 ‘목불’이 더 많다. 석불, 목불은 조각이 실패할 경우 수정할 수 없다는 결점을 가졌다. 이와 달리 건칠불은 양(量)을 덧붙여가며 조각하므로 제작 과정에서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 무게도 석불, 목불보다 훨씬 가볍다.

건칠불은 고려말과 조선 초에 유행했다. 경주 기림사와 영덕 장륙사의 건칠보살반가상은 삼베가 아닌 종이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태조 4년(1395)에 장륙사의 것이, 연산군 7년(1501)에 기림사의 것이 만들어졌다는 기록은 남아있다. 하지만 제작 방법은 남아있지 않다. 현대에도 몇몇 학술적 연구만 있을 뿐 제작 방법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다보니 건칠불에 대한 전승의 맥은 끊겨 있었다 할 정도였다.

▲ 나발을 만들고 있는 모습. (제공: 오삼록 옻칠공예가)

◆전국 돌며 건칠불 연구

이 같은 건칠불에 오 공예가가 관심을 둔 건 20여년 전이다. “한지공예가인 아내의 스승인 상기호 선생이 제23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지불(紙佛)’로 대통령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때 처음 건칠불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이후 오 공예가는 건칠불과 관련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건칠불이 워낙 희귀하다 보니 관련 자료를 찾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만큼 건칠불 재현은 어려웠다. 그렇게 10여년간 자료를 찾아 헤매고, 전국 각지를 돌며 사찰 불상을 연구했다. 그리고 3년 전 작업 제작에 돌입했다. 제작의 모든 과정도 스스로 찾아가야 했다.

“제작 당시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만들어 본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죠. 제 스스로 머릿속으로 설계도를 계속 그려야 했습니다.”

오 공예가는 ‘아미타상현좌불상’ 제작을 위해 처음에 흙으로 형태를 잡고 삼베 바르기와 옻칠을 10여회 반복했다. 이어 형태를 굳혀 흙과 목심 뼈대를 제거하고 다시 목칠분과 옻칠하기를 반복하면서 세부조각에 임했다.

오랜 공정이 거친 후에도 여기에 다시 옻칠을 하고 순금을 입혔다.

불상의 수인(손)도 역시 건칠로 따로 제작해 고정했다. 두상 나발은 목심에 삼베를 감아 소라뿔 형태로 하나하나 만들고 두상에 홈을 파내 토회칠로 고정한 후 옻칠을 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불상의 손의 형태, 앉은 자세의 종류도 각각 의미하는 바가 있었기에 이론적인 모든 것도 틈틈이 공부해야 했다. 건칠불이 완성되기까지 시행착오와 실패, 재도전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견디고 견뎌 건칠불은 700년 만에 세상 빛을 보게 됐다. 그러다 보니, 그 가치는 엄청났다.

“이론적으로 ‘이렇게 만든다’는 연구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건칠불로 제작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 완성된 건칠불(제공: 오삼록 옻칠공예가)

◆“전통 문화, 사람들 알아주길”

오 공예가는 전승의 맥이 계속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통문화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매우 적습니다. 건칠불만 해도 학자들의 관심이 적다 보니, 연구도 미흡합니다. 하지만 선조들이 지킨 문화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있는 겁니다.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공동체를 이루고, 한마음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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