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화소설 ‘선희’ 저자 이주성씨 ⓒ천지일보(뉴스천지)

실화소설 ‘선희’ 저자 이주성
생각보다 남한사람들 북한에 관심 없다고 느껴
남녀 이야기서 북한주민의 삶의 무게 느낄 수 있게 담아
소설 배경 2000년대 초, 지금은 北 인권 더 악화
여성·정치인, 책 읽고 北 심각성 느꼈으면 하는 바람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그간 탈북자들은 세상에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북한의 실상과 인권문제, 가정사, 개인의 상처까지. 이제 솔깃한 내용이 아니면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남한 사회에 실망한 탈북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탈북자 이주성(52)씨는 이러한 실망감과 무관심을 뒤로하고 지난해 말 실화소설 ‘선희’를 펴냈다. 440페이지 분량의 이 책은 두 남녀의 개인적인 사랑이야기를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앞서 수많은 탈북자, 전문가가 말하고자 했던 북한의 실상이 다 담겼다. 300만명이 아사한 것으로 알려진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북한을 배경으로 했다.

“북한에서 겪었던 참상을 말과 글로 어떻게 다 옮기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이렇게 짧은 글을 통해서라도 눈을 감지 못하고 떠나간 영혼들, 지금도 제3국 어딘가에서 떨고 있을 탈북자들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선희. 책 제목이자 소설 속 여주인공이다. 그 두 글자가 책 곳곳에 가득 박혀 있다. 선희는 앞서 모아둔 돈을 찾기 위해 15년 전 중국에 넘어갔다가 북한으로 오는 도중 국경 경비대원에게 총살당한 이씨의 옛 연인이다.

가정도 있는 그가 십여년 뒤 이 이름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또 꽤 자세한 애정 이야기인데도 이씨의 아내는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의 출판을 허락했을까.

그 궁금증은 이씨와의 대화에서 쉽게 풀렸다. 이씨는 “지금도 수백만, 수천만명의 리선희”가 있다고 고백했다. 다음은 이씨와의 일문일답.

 

- 북한 내 인권 개선을 위해 활동해오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어떤 의미가 있나.

남한에 정착해 산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살면서 느낀 게 있다면 생각만큼 사람들은 북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북한 실상은 이렇구나’ 하는 정도.

그러다 출판사에서 책 제의를 받았다. 어떤 책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그간 탈북자들이 말하기 꺼려했던 개인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북한은 이렇다, 저렇다’ ‘나는 이런 것을 겪었다’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한 남녀의 삶으로 들어가 북한을 알린 글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북한에서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사실 궁금했다.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많이 들어왔어도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독재정권, 공포가 서린 북한에도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사랑은 삶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나 ‘사랑’은 존재한다. 그 사랑을 주제로 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그럼 북한과 남한, 무엇이 다른가.

가족과 연인과의 소박한 행복조차 지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북한은 말 한마디에 처형을 당하기도 하고 수용소로 끌려가 영원히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가족이 해체되고 몰락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또 일부가 아닌 대다수가 가난, 굶주림과 싸워야 한다. 살기 위해서 중국행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선희도 그러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유린도 심각하다.

- 북한 못지않게 중국에 대한 증오가 느껴진다.

선희가 중국 남자들에게서 겪은 성노예 취급은 선희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수많은 탈북여성이 비슷한 일을 경험한다. 인간의 윤리, 도덕의 스승으로 선전하는 공자, 맹자를 낳은 중국의 내면세계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 선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남자 주인공 원명은 저자인가.

그렇다. 내가 겪은 이야기를 쓴 것이다.

- 그렇다면 아내로선 서운할 것도 같다. 애정에 관한 얘기도 나오니까.

처음엔 아내도 반대했다. 그러나 북한을 알리는 데 필요한 일이라고 이해시켰다. 집사람도 책 내용을 다 안다. 내가 보라고 원고를 줬다. 읽고선 왜 이 책을 쓰는지 이해가 된 모양이다. 책이 나왔을 때 가장 먼저 사인해줬다.

- 남녀 주인공 각각의 시점을 보여줬다. 특히 여자가 봐도 선희의 심리를 잘 담아냈다.

북한에서 남녀 각각이 겪는 삶과 생각을 더 자세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인권 앞에 여자의 생각, 남자의 생각이란 게 큰 차이가 있겠나. 선희 시점에서 이야기를 자세히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선희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고 아픔을 나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 실화소설 ‘선희’.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북한의 실상과 인권문제를 담았다. (제공: 책밭)

- 책을 보면 다양한 곳에서 인권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기차 안이 인상에 남는다. 군인들이 짐과 무기를 들고 기차에 오를 때 주민들을 발로 차고 자리를 빼앗았다. 그 과정에서 엄마 등에 업혀있던 아기가 죽었는데 체념하는 분위기였다. 기관사가 먹지 못해 힘이 없어 기차가 멈춘 것도 충격이다. 남한에서는 뉴스감이다.

더한 일도 발생한다. 장사를 하기 위해 1950년부터 2000년까지 몇 년간 기차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 정말 힘들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사꾼들은 돈이나 식량을 만들 수 있는 짐을 가지고 탔다. 짐을 지고 걸어갈 수 없고 또 다른 운송수단이 없기 때문에 기차에 매달려서라도 갈 수밖에 없었다. 한 번 기차에 타면 목적지까지 보름이 걸린다. 당시 식량난이 절정에 달한 시기로 옆 사람이 굶어 죽어나가도 누구 하나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기차 안에서 영양실조로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 인권이 아주 없나. 아기가 죽었을 때 보안원이 와서 조사를 했다.

조사 형식은 있어도 말 그대로 틀만 있는 것이다. 정말 정의를 위해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북한에서 법은 권력에 의한 정권유지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착취나 폭행, 성적인 학대를 당해도 전혀 법적인 보호 장치가 없다.

- 한 번 기차에 타면 보름이 걸린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함북도와 황해도는 서울과 부산 거리밖에 안 된다. 몇 시간이면 갈 거리를 전기가 없으니까 보름씩 가는 것이다.

- 기차를 움직일 전기도 공급이 안 된다는 것인가.

그것도 생각하면 우습다. 기차가 가다가 서면 전기 공급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북한은 석탄으로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한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먹지 못해 힘을 쓰지 못하니까 석탄을 생산 못하고 결국 전기도 생산 못해 기차가 운행을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 생각해보니 평양 출신이라고 들었다. 이렇게 장사까지 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렵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모두 독립유공자였다. 아버지도 고위직에 있었으나 바른 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비밀처형당할 위기에 놓이게 됐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가족이 함경북도 회령의 산골오지 탄광으로 강제 이주했다. 북한엔 성분으로 사람을 나누는데 청산 대상에 속했다. 그러다 보니 군대도 못가고 대학은 꿈도 못 꿨다. 한마디로 고위층에서 사회 최하위 계층으로 전락돼 살 수 밖에 없었던 슬픈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 나중엔 무역업을 한 것으로 아는데 그건 가능한가.

운이 좋았다. 무역업은 북한에서 모든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배우자 직업이다. 원하는 물자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해외도 다닐 수 있고 돈(달러)도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1995년 당시 경제를 위해 달러를 벌어야 하는데 핵심군중(가장 좋은 계급)은 대게 아부꾼들로 아부할 줄만 알았지 장사 머리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 성분을 가리지 말고 달러를 벌 수 있는 사람을 선별해 무역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당시 능력을 인정받아 무역기관을 설립할 수 있었다.

-그러면 선희가 돈 때문에 중국에 들어가지 않아도 됐을 텐데.

무역업은 선희가 죽고 난 이후에 한 것이다. 내가 무역업을 하면서 선희와 고생했던 날들이 머리에 자주 떠오르곤 했다. 그녀가 죽지 않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중국에 돈을 벌기 위해 가는 것은 비일비재한 것으로 안다. 그런 점에서 선희의 죽음이 이해되지 않는다.

당시 민간에선 경비대 군인들이 중국에 갔다 오는 사람들의 돈과 물건을 빼앗는다는 말이 많았다. 선희 또한 그렇게 희생됐다. 책에도 나오지만 그 군인도 결국 사형 당했다.

▲ 생각에이주성씨 ⓒ천지일보(뉴스천지)

- 결국 모두가 피해자인 듯하다. 그런데 소설은 2000년대 초반까지를 배경으로 했다. 현재는 북한의 인권상황이 좀 나아지지 않았나. 어떤가.

김정은이 북한을 통치하면서 오히려 더 인권상황이 악화됐다. 김정은은 중국이나 한국에 가는 사람을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탈북하는 사람들을 죽인 군인에겐 표창휴가를 주고 조선로동당에 화선입당시키며 대학에 보내주라는 지시를 내렸다. 주민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단편적인 실례다.

- 책이 나온 지 1년이 돼 간다. 바람은.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북한의 실상과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여성들, 정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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