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윤여정. (제공: ㈜콘텐츠 난다긴다)

계춘 연기할 때 ‘증조할머니는 내가 얼마나 예뻤을까’ 생각
해녀복 벗다 귀 찢어지고 뱀장어 맨손으로 잡다가 물리기도
연기도 오래 해서 잘할 수 있다면… 해보니 정답이 없어요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70이 처음이잖아요. 나는 모르지 살아봐야 아는 거죠. ‘늙은이들이 주책없구나. 저 정도 나이면 알 텐데’ 그게 참 곤란한 거더라고. 우리가 다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 다 처음이더라고. 똑같은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하겠죠.”

지난 2014년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 출연해 많은 어록을 남긴 배우 윤여정. 당시 발언처럼 ‘누구나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는 그의 생각은 여전했다. 그의 어록은 솔직하고 직설이면서 공감대를 불러일으켜 화제가 됐다.

배우 윤여정을 생각하면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머리에 깔끔한 검은색 원피스가 연상될 만큼 도회적이면서 세련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영화 ‘계춘할망(창 감독)’을 통해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엄마가 93세이신데 TV에 할머니 나오는 것을 보고 화를 내시더라고요. 요즘 어떤 할머니가 요강에 오줌 누냐는 거죠. 왜 다들 할머니를 노망든 것으로 표현하느냐는 것이에요. 그래서 도시에서 세련되게 하고 다니는 할머니를 해보고 싶다는 거였어요. 도시의 할머니 마음이나 요강에 오줌 누는 할머니 마음이나 똑같겠죠. 뭐.”

과거 인터뷰에서 윤여정은 ‘잘 늙은 할머니 역’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한 적 있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제주도 해녀 할머니 계춘으로 나오지만 할머니가 성공적으로 된다면 나의 염원이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계춘을 캐릭터를 잡기 위해 윤여정은 증조할머니를 떠올렸다. 3대 독자가 나은 딸인 그는 “연기하면서 딱 정한 것은 없었다. 다만 우리 증조할머니가 내가 얼마나 예뻤을까를 생각했다”며 “증조할머니에게 감사하다고 표현 한 번 못해보고 (돌아)가시게 한 것을 50이 넘어서 얼마나 잘못한 것인가를 알게 돼 애통했다”고 회상했다.

▲ 영화 ‘계춘할망’ 스틸. (제공: ㈜콘텐츠 난다긴다)

“(증조할머니에 대한 마음은) 오래 살았으니까 소화가 돼서 되새김하듯이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거지. 그게 계획을 하거나 정답이 있는 수학문제 푸는 게 아니잖아요. 계춘의 모습에서 증조할머니가 녹아서 나왔다면 할머니한테 바치는 작품이 되겠죠.”

제주도에서만 살아온 계춘은 해녀 중에서도 제일 경력 많고 물질을 잘하는 상군 해녀다. 윤여정은 계춘이 되기 위해 해녀가 돼야 했다. 그러다가 다치기도 했다.

윤여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해녀복을 입고 벗고 하는 게 간단하지 않다. 해녀복을 입으면 점점 쪼여온다”며 “해녀들은 잠깐만 입고 물질을 5분 정도 한다. 나는 촬영 때문에 종일 입고 있으니 숨도 못 쉬고 그랬다. 힘들어하니까 스태프가 도와준다고 벗기다 귀가 걸려 찢어졌다. 별이 번쩍하는 게 그런 거더라. 진짜 해녀보다 가짜 해녀가 더 힘들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몸을 사리지 않는 그는 이번엔 뱀장어와 씨름하다가 물렸다. 그는 “뱀장어 잡아 앞치마를 넣는 신이었다. 나는 원래 그런 거 잘못 만지는데 배우는 임무니까 해야 했다. 생전 만져 볼 일이 있겠느냐”며 “제작진이 갖다 놓아야 잡는데 키가 180이 넘는 제작진이 장갑을 끼고도 못 만지더라. 내가 찍어야 하니까 잡아서 꺼냈다. 그 친구에게 ‘너는 서울서 곱게 자랐나 보다’하고 농담했는데도 못 알아듣더라”고 말했다.

“예쁘게 나오는 역이 아니라 너무 좋아. (다른 사람들이) 늙게 보이는 것 때문에 걱정하더라고. 늙은 연기는 정말 쉬워요. 그런데 젊은 연기는 이제 못하죠. 그러니까 젊음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에요. 늙은 연기는 행동이나 억양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젊게 하라는 건 곤란하죠.”

▲ 영화 ‘계춘할망’ 스틸. (제공: ㈜콘텐츠 난다긴다)

‘장수사회’ ‘하녀’ ‘즐거운 나의 집’ ‘돈의 맛’ ‘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 등 그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유난히 강한 캐릭터가 많다. 이 때문에 윤여정은 일명 ‘센 언니’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선택은 했지만 의도한 바는 아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어떤 작품을 선택하느냐다”며 “내 본성이나 자아 속에 뭔가 있으니까 선택했을 거다. 임상수의 ‘돈의 맛’ 했을 땐 그런 역할 한다고 작은아들이 많이 화내기도 했다. 그 역할이 역할이지 그거 가지고 이미지 관리할 나이도 아니고, 화장품 광고 모델도 아닌데…. 나는 (이미지 변신에 대해) 별 두려움이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연기가 오래 해서 잘할 수 있는 거면 좋겠죠. 장인들은 하다 보면 어떤 경지에 이르잖아요. 연기는 해보니까 정답이 없어요. 잘했다고 칭찬받는 건 누군가한테 공감을 줬다는 거겠죠. 그 수치도 정확하지 않고 정답 없는 길을 가는 거예요. 오래 해서 나쁜 점도 많아요. 내가 많이 오염됐죠. 나는 많이 녹슬었고 내 똑같은 얼굴과 목소리로 많은 사람을 오래 접해왔잖아요. 새로운 걸 시도한다는 게 통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오래 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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