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우리의 삶 속에 뿌리내리며 자리 잡고 있는 의식과 가치관이 있다. 이는 우리 고유의 전통과 찬란한 역사 문화유산마저 배척하며 그 위에 군림하며, 우리의 모든 생각과 의식을 사로잡아 굴복시켜 왔다. 그 정체는 바로 설익은 기독교 문화며, 이 기독문화는 오늘날 기득 권력이 되어 모든 분야로 하여금 종노릇 하게 하고 있다. 이 기득권은 정치·사회는 물론 언론마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하는 등 각 분야에 걸쳐 깊숙이 뿌리내리며 민족 고유의 정신마저 파괴시켜 무너뜨리고 있다. 이 기득권은 다수라는 힘으로 모든 계층과 분야를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권력이 된 다수의 기득권자들은 마치 정의의 수호신인 양 행세하며 소수의 생각을 단죄하며 무차별적으로 핍박하고 있다. 다수는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과 힘이 될는지는 몰라도 정의와 진리와 진실과 등식관계가 성립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유사이래(有史以來) 정의와 진리와 진실은 언제나 소수의 편에 있었음을 교훈삼아야 할 것이다. 기득 권력의 주체가 된 기독교 문화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 개신교와 가톨릭을 일컫는다. 이 기독교 문화는 반만년 이어온 우리 역사와 문화마저 삼켜버릴 기세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독교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종교지도자들의 종교에 대한 오해와 사술(詐術, 남을 속이는 기술)에서 비롯되니 곧 무지의 결과다.

한국기독교는 이미 정치화된 권력집단일 뿐 종교와는 무관하며 돈과 명예를 중시 여기던 이천년 전 유대땅을 어지럽혔던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은 존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종교를 떠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합리화시킬 방편으로 진리 대신 늘 정치권력과 하나 되기를 즐겨왔다. 이러한 정교일치(政敎一致)를 앞장서 견인해온 대표적 교단이 바로 장로교(長老敎)이며, 이 장로교는 장로가 곧 교회의 주인이라는 의미니 예수교가 아니라는 얘기도 된다.

여기서 잠시 오늘날 장로교를 탄생시킨 시조격인 칼뱅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칼빈으로도 불리는 칼뱅은 약 오백여년 전 프랑스의 기독교 신학자로 종교개혁에 앞장섰던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다르게 칼뱅은 오늘날의 기독교 신학(성경)을 왜곡시킨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칼뱅이 탄생시킨 장로교는 칼빈교일 뿐 예수교는 아니다. 그에 대해 더 알아보면, 그는 프랑스에서 출생(1509)해 신학을 하던 중 가톨릭의 박해로 제네바로 이주해 생활해 왔다. 이 때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은 칼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당시 제네바 주민들은 “제네바에 위선적인 도덕성을 부여한 따분한 방랑자쯤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헤럴드 트리뷴은 보도에서 “칼뱅은 제네바 학교 교육과정에서 검소하나 도덕성을 강제하기 위해 신체적 억압을 동원한 강압적인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나아가 교리적인 측면에서도 칼뱅은 장로교의 뿌리다. 그는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구성된 교회직제의 기초를 세웠으며, “하나님이 구원과 멸망을 이미 예정해 놓았다. 그걸 바꿀 수는 없다. 사람은 단지 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는 예정론(豫定論)을 주창했다. 그의 예정설을 놓고 내부에서도 격한 논쟁이 있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은 백과사전과 위키백과가 공동으로 밝히고 있는 내용이며, 많은 자료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칼뱅의 신학은 성경적 해석이 아닌 자의적 해석이며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출간되는 주석(註釋)의 아버지가 된다. 즉, 사람의 생각과 계명이니 바로 사술이며, 신(神)의 뜻을 왜곡시킨 장본인에 불과하다. 이는 오늘날 종교의 부패로 인한 기독교 종말을 초래한 결정적 요인이 된다. 자기 교리를 신봉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체적 억압, 더 나아가 마녀사냥식으로 신앙인들을 화형 등의 방법을 동원해 죽음으로 몰고 간 이단아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또 위선적인 도덕성을 가졌다고 회고하듯이 경건의 모양만을 강조하며 성령이 없는 오늘날의 종교지도자들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뿐인가. 구원과 멸망이 이미 정해진 것이라면 왜 신앙을 해야 하는가. 죄를 사함 받아 구원에 이르는 구도(求道)의 길이 바로 신앙이며,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어찌 됐든 이러한 장로교 교리는 17세기 초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가톨릭에 불만을 품은 청교도 분리주의자들을 양산했고, 이들이 주축이 돼 17세기 영국의 청교도혁명을 주도하게 됐다. 이 시기(1620년)에 104명이 탄 메이플라워호에 35명의 청교도인이 함께 승선,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 개척정신이라는 허울을 쓰고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등 피로 오늘의 아메리카 대륙을 건설하게 된 것이다. 결국 청교도인들은 살육(殺戮)의 역사로 오늘의 미국을 건설했으니, 그 장본인들이 바로 장로교도 즉, 칼뱅의 후예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장로교가 구한말 선교(宣敎)라는 이름으로 대한제국에 상륙해 또다시 오늘의 대한민국의 기득권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한국의 장로교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대표적 사건이 일제치하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일본 ‘천황 신’을 모신 치명적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이 같은 배교(背敎)행위는 해방과 함께 또 다시 동족상잔으로 남북이 갈라져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솔로몬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그 많은 지혜와 축복을 받았으나, 이방신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신은 떠나고 결국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역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잠시 주의해야 할 것은 이는 다만 종교적 신학적 관점에서 바라 본 해석이니 억지로 비약시키지 말 것을 못 박는다). 한국 장로교의 배교행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1960년 삼선개헌 반대를 목적으로 탄생한 소위 진보진영이라고 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견제하기 위해, 1989년 12월 장로교를 중심으로 한 보수 세력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CCK)’가 창설됐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적 목적에 의해 창설된 것은 분명하니, 종교를 빙자한 정치조직이 틀림없다. 이 한기총은 다시 한기총 내 개종목사와 이단 전문가들 간의 이단 논쟁이 극심해지고, 그 산물로 2012년 ‘한국교회연합(한교연, CCIK)’이 분리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실 한기총은 1980년 전두환 정권 당시 정치적 반대파를 잡아들이기 위해 ‘삼청교육대’를 창설하는 한편 종교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단 척결이라는 미명하에 설립한 ‘청지기교육원’의 후신이기도 하다.

이로 보아 한국에 상륙한 장로교는 시작부터 종교성이 의심 받아 마땅하며, 역사의 기로마다 정치와 하나 돼 권력의 길을 정당화 시키는 데 시녀 역할을 다해온 배교행위는 민족의 역사와 종교의 역사가 엄중히 기록으로 남겨 왔다. 그들 손에 늘 들려 경건의 모양을 더해 주는 성서에는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고 했고,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고 기록돼 있으니, 이제 그 때를 맞이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기독교와 신의 이름으로 권력과 명예와 돈을 좇은 종교지도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진실이 드러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하늘의 섭리를 어찌 거역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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