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이강두 국민생활체육회 명예회장이 본지 이상면 대표와 가진 신년대담에서 그간의 소회를 밝히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정치권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국회, 패권다툼 멈추고 국가와 국민 위한 정책 내놔야”

4선 동안 국민 위한 정책에만 몰두해
서민 위해 ‘EBS교육강좌’ 정책 제시
국회, 국가와 국민 위한 의정활동해야

생활체육회장 맡아 국민건강에 역점
생활체육, 전국대회까지 열리며 확산
TAFISA 회장 맡아 생활체육 세계화

6.25 후 빈곤탈출에만 집중하던 국민
88올림픽 후 건강‧체육에 국민적 관심
체육활동, 지역경제활성화에도 선순환

[천지일보=송태복 기자]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을 내놔야할 국회가 패권에만 몰두해 있습니다.”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강두(80) 국민생활체육회 명예회장이 어지러운 정치권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이 회장은 2008년 8월 선장 없이 표류하던 국민생활체육회의 수장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세계생활체육연맹 회장에도 취임했다.

이 회장은 생활체육을 통한 국민건강 증진뿐 아니라 국회의원 시절 ‘사교육비 제로 프로젝트’로 EBS교육강좌를 추진해 빈부 격차 없이 인기 강사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했다. 원래 경제통인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기획원에서 해외투자유치 업무를 시작으로 주소련 한국대사관 경제공사를 지냈다.

탁월한 성과로 정치권에 발탁된 이후 14~17대(1992~2008년) 국회까지 적지 않은 세월을 정치에 몸담았다. 지난 15일 천지일보 본사에서 본지 이상면 대표와 가진 신년대담에서 이 회장은 그간의 소회와 더불어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정치권을 향한 묵직한 충고를 들려줬다.

- 정치권에 오래 계셨던 분이 국민생활체육회 수장과 세계생활체육연맹(TAFISA) 회장까지 연이어 맡게 됐던 배경이 궁금하다.

평소 운동을 생활화한 것이 이유였던 것 같다. 요즘도 매일 아침 2시간씩 국선도를 한다. 경제기획원 재직 당시에는 축구팀을 직접 만들어 운용했다. 1997년부터 10년간 전국게이트볼연합회 회장도 맡았다. 일련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2008년 국민생활체육회장을 맡게 됐다. 취임 직후 부산에서 세계생활체육대회를 성공리에 개최했다. 부산대회를 본 세계생활체육연맹 회원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이듬해 TAFISA 회장까지 맡게 됐다.

- 국민생활체육회 활동을 통해 얻은 성과는 무엇인가.
생활체육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생활체육 육성으로 국민이 건강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 지자체별로 생활체육 기구가 마련 된 것도 그런 활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생활체육 보급은 대항전이 생겨나면서 더 탄력을 받았다. TAFISA 회장을 겸하면서 생활체육의 세계화에도 기여했다.

- 국민생활체육회 활동 중 가장 획기적인 성과를 꼽는다면.
면 단위 군 단위 대항전을 넘어 전국대회까지 열린 것은 기대이상의 성과였다. 지자체별로 경쟁심리가 생기니 동네마다 운동기구가 설치됐다. 우수선수 양성을 위해 체육시설도 보강하고 생활체육을 격려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확산됐다. 정부가 생활체육 대항전을 지원하면서 정부와 민간이 소통하는 계기도 됐다.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데도 기여한 셈이다.

- 경제발전이 됐기에 생활체육운동이 성공한 것 아닌가.
맞다. 6.25 전쟁 이후 온 국민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어느 정도 경제발전을 이룬 시점에 시작된 국민생활체육 운동이 자신의 건강을 돌아보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테니스나 걷기 등 생활체육활동에 참여하면 건강해질 뿐 아니라 친구가 생기고 사회활동도 활발해지면서 지역경제발전에 다시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난다.

▲ 본지 이상면 대표이사(왼쪽)와 이강두 명예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국회의원으로 보낸 시간이 적지 않다. 오랜 정계 활동 중 가장 보람을 느꼈던 때는 언제인가.

‘사교육비 제로 프로젝트’의 하나로 ‘EBS교육강좌’ 정책을 추진했다. 반대에 부딪쳐 2년 만에 어렵게 법안이 통과됐다. 재선이 된 후 어느 날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가 계속 힐끔힐끔 쳐다봤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답을 하지 않더니 내리는데 “이강두 의원 맞으시죠?”라고 묻더라. 그렇다고 하니 갑자기 “고맙다. 의원님 덕에 아들이 서울대에 들어갔다”면서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사연을 들어보니 EBS교육강좌를 듣고 아들이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방송에 출연해 EBS교육강좌의 필요성에 대해 말했던 것을 듣고 나를 알아봤던 것이다. 그때 정말 ‘정치인으로서 국민에게 필요한 일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뿌듯했다.

- ‘형만 한 아우가 없다’는 말이 있다. 정계 대선배로서 요즘 정치권에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시골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돼 정당 최고위원과 정책위의장까지 경험했다. 현재 국회는 패권에만 몰두해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을 내놓는 국회가 돼야 한다. 남북통일이라는 과업을 이루고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정말 국가 발전과 국민을 최우선에 두고 의정활동을 해야 한다. 또 국민과 언론은 이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이 회장은 비경으로 유명한 경남 거창 우두산(牛頭山: 산세가 소의 머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 자락에서 태어났다. 시골 출신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특별한 정치적 배경 없이 4선 의원까지 지냈으니 ‘개천에서 난 용’인 셈이지만 그에게서 권위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스럽게 내뱉는 모습에서 왜 일선에서 물러난 그를 많은 사람이 찾는 지 알 수 있었다.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의 18대손으로 전주 이씨 왕손이기도 한 이 회장은 요즘 왕실문화 복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많은 나라가 왕실문화를 보존해 고유문화를 알리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면서 왕실문화 복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온 그가 올 한해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 국민생활체육회란?
1988년 개최된 서울올림픽경기대회 이후 민간 차원의 생활체육을 육성하고 건전한 체육문화를 창달하기 위해 설립됐다. 1991년 국민생활체육협의회로 출범해 1994년 세계한민족체전위원회와 통합했다. 2009년 6월 국민생활체육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16개의 시도생활체육회부터 9만 5천여개의 생활체육동호인클럽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의 체육단체와 연계해 범국민 체육 생활화운동 전개·생활체육 프로그램 개발 및 보급·체육 동호인 활동의 지원 및 육성·생활체육지도자의 효율적 관리 등 다채로운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약력
4선 국회의원(14~17대)
상생코리아 의장
국가발전정책연구원 이사장
국민생활체육회 회장(2008~2012년)
세계생활체육연맹(TAFISA) 회장(2009~2013년)
녹조근정훈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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