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종금 ㈔대한삼보연맹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인터뷰| ㈔대한삼보연맹 문종금 회장

14년 전 한국에 삼보 들여와
선수 없어 직접 활동하기도 해
한국-러시아 교두보 역할 다짐

이간질로 표도르와 재판 겪고
금품갈치 등으로 검찰기소까지
순탄치 않은 여정 속 ‘무죄’ 판결

삼보연수원·박물관 짓는게 꿈
러시아 통해 北에도 보급할 것

[천지일보=김민아 기자] “삼보로 한국과 러시아의 교두보 역할을 하겠다는 꿈으로 시작했죠. 주변에서 무모한 도전이라고 말렸지만, 이제 꿈이 실현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대한삼보연맹 문종금(59) 회장은 삼보계의 대부 같은 인물이다. 14년 전 삼보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삼보를 들여와 가꾸고 길렀다. 삼보는 러시아 전통 무술이다. 레슬링과 비슷하다. 도입 후 5년간 한국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메달권은 엄두도 못 냈다. 그러나 결국 꽃을 피웠다.

2015년 12월 14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컴뱃삼보 82㎏급의 이진우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스 65㎏급의 윤성진, 57㎏급의 오협찬, 주니어 62㎏급의 정진석, 주니어 68㎏급의 오태석이 동메달을 땄다. 아시아선수권 역대 최고성적이었다. 문 회장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였다.

그는 승승장구했다. 카자흐스탄 아트라우에서 열린 세계삼보연맹 총회에서 동아시아삼보연맹 회장직을 추가로 맡았다. 2016년과 2019년엔 각각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 국내 유치를 앞두고 있다. 현재 한국엔 150여개의 삼보 체육관과 3000~4000명의 삼보 가족이 있다.

◆한-러 관계의 교두보 역할

삼보는 러시아의 국기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맨손호신술이란 의미다. ‘60억분의 1의 사나이’ 에밀리아넨코 표도르가 가장 대표적인 선수로 꼽힌다. 그는 컴뱃삼보대회 챔피언이지만, 이종격투기 선수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 지난해 12월 14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메달을 획득한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성진 선수, 정진석 선수, 류인권 대한삼보연맹 서울지부장, 이진우 선수, 오협찬 선수, 오태석 선수. (사진제공: 대한삼보연맹)
삼보 기술을 요약하면 유도의 메치기와 굳히기, 레슬링에서의 서플렉스와 테클 등을 포함한 종합 격투술이라고 할 수 있다. 구 소련 특수부대의 격투교과과정으로도 사용됐다. 그만큼 실전에 가장 적합한 종목으로 평가받는다.

문 회장은 2002년 러시아 대사를 통해 삼보를 처음 만났다. 합기도 사범이었던 문 회장은 우리나라 민속 씨름과도 비슷하고 유도와도 닮은 삼보의 매력에 빠졌다. 삼보로 한국과 러시아의 교두보 역할을 해야겠다는 꿈도 이때부터 품었다. 삼보를 매개로 러시아를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스포츠·문화 교류뿐 아니라 외교·경제 협력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3년 방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환영 나온 삼보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등 파격 행보를 연출했다. 문 회장은 삼보를 통한 민간외교 역할로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국제삼보연맹 명예총재인 푸틴 대통령은 삼보의 2016년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위해 힘쓰고 있다.

문 회장은 동아시아연맹 회장을 겸하면서 베트남, 라오스, 대만 등 아시아에 삼보를 보급하고 있다. 러시아를 통해 북한에도 삼보를 보급할 계획이다. 문 회장은 “삼보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면 대한민국 삼보가 아시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순탄치 않은 여정… 찾아온 기회

한국 삼보는 ‘Mr. Moon(미스터 문)’으로 통할 만큼 세계 삼보에서 문 회장의 입지는 확고하다. 그러나 문 회장의 삼보 여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7년 1월 대한삼보연맹의 초청으로 표도르가 한국을 방문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삼보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그 기회는 비수로 돌아왔다. 표도르가 방문 당시 찍었던 광고에 대해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7억 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

2013년에는 국회의원의 해외 방문 동반 경비 및 사업확장 지원, 불법체류 경력자의 비자 발급 청탁 대가 등 각종 명목으로 1억 5000만원대 금품을 가로챈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문 회장은 이 두 사건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문 회장은 재판 당시 변호사 없이 나홀로 법정에 섰다. ‘진실’은 반드시 이긴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 회장은 “삼보가 발전하기 시작하니 시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등을 돌려 자신을 공격했다”며 “제3자의 이간 때문에 표도르와 재판까지 간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다”고 회고했다.

이어 문 회장은 “역경과 고비를 넘기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며 “명예회복 이후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표도르와는 국제경기에서 만나면 인사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할 만큼 관계가 회복됐다.

◆목숨 걸만큼 삼보와 사랑에 빠져

문 회장은 자신을 삼보에 ‘미쳤다’고 표현한다. 삼보를 처음 한국에 들여왔을 때는 선수가 없어 문 회장이 직접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세계적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한국 삼보의 저변에는 문 회장의 남다른 ‘열정’이 있다.

어릴 적부터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문 회장은 무술인으로 성장했다. 그러다 1977년 김선경 감독에게 발탁돼 ‘무협문’으로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연기에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한 문 회장은 연출로 눈을 돌렸다. 1990년 영화 ‘무’의 제작자로 데뷔에 총 8편의 영화를 감독·제작했다. 한국 영화계가 어려워지자 문 회장은 영화 수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I am Sam(아이 엠 샘)’으로 영화계에서 문 회장은 ‘하늘에서 별을 딴 놈’으로 불렸다.

▲ 지난 해 10월 18일 강원도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열린 제 96회 전국체육대회 동호인 삼보대회 후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대한삼보연맹)
문 회장의 남다른 도전 정신과 열정은 삼보에 대한 투자로 이어졌다. 삼보를 만난 그는 목숨을 걸어도 될 만큼 사랑에 빠졌다. 한 컴퓨터 회사와 이름이 비슷한 탓에 주변 사람들이 ‘컴퓨터 팔러 다니느냐’며 비아냥거렸지만, 문 회장은 삼보의 가능성을 확신했다.

문 회장은 “성공이라는 것은 돈과 명예, 권력도 중요하지만 내가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며 “인생의 한순간도 게으름을 피우거나 꾀를 부린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며 “누가 나를 바보라고 할지라도 한 번 결심한 일은 미친 듯 몰두한다”고 말했다.

문 회장의 바람은 남은 인생을 삼보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한국에 삼보연수원과 박물관을 짓는 것도 문 회장의 꿈이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한국 삼보를 위해 인재 발굴에도 힘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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