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의 소설 <주름>, 미술작품으로 재탄생

박범신의 소설 <주름>이 미술가 안종연에 의해 다시 태어난 <시간의 주름> 전시회가 다음달 3일부터 28일까지 갤러리 학고재 본관과 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문학사랑과 대산문화재단이 2004년부터 ‘문학과 미술의 만남’으로 기획해 왔으며, 20번째를 맞는 전시회이다. 

미술가 안종연은 박범신 소설의 <주름> <고산자> 등에서 모티브를 얻어 소설의 내용을 평면과 입체, 그리고 영상과 설치에 이르기까지 60여 점을 시각언어로 형상화했다.

소설 <주름>은 50대 중반의 주류회사 자금 담당 이사 ‘김진영’과 4살 연상의 시인이자 화가인 ‘천예린’이 운명적 만남을 갖지만, 그녀가 외국으로 떠나자 회사의 자금을 횡령해 그녀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또 <고산자>는 조선시대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생애를 담은 소설이다.

이들 소설의 내용을 바탕으로 새롭게 다양한 미술작품으로 태어난 그의 작품세계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빛의 에젠

▲ 빛의 에젠. ⓒ천지일보(뉴스천지)

“산, 숲, 강, 호수, 해, 달, 별에게도 영이 있답니다. 또 사람도 제각기 에젠(ezen)이라고 불리는 영을 갖고 있는데 사람의 운명이 이 에젠의 지배를 받아요. 에젠의 이끌림을 잘못 받으면 죽음과 파멸뿐이지요.” - 주름 中

이 작품은 컬러 스테인리스 스틸 판재를 전동 드릴로 쪼아서 형상을 새기고, 그것을 다시 열처리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 안종연 특유의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모든 자연에 깃든 ‘영혼’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바이칼의 에젠

▲ 바이칼의 에젠. ⓒ천지일보(뉴스천지)

“나의 유랑이 끝난 곳은 바이칼이었다. 그녀가 영원히 눈 감은” - 주름 中

바이칼 호수는 지구에서 가장 깊고, 가장 오래된 호수라 할 수 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이 호수는 천예린이 숨을 거두는 장소이자 김진영의 유랑이 끝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차가운 호수 표면의 빙판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바이칼의 깨끗한 빙판을 표현하기 위해 에폭시라는 소재를 선택했고, 스왈로브스키 가루로 반짝임을 더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넓고 깊은 청량한 호수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했다.

◆빈 중심

▲ 빈 중심. ⓒ천지일보(뉴스천지)

소설에서 김진영이 찾아다닌 자유와 유랑은 그 중심이 텅 비어있었고, 결국 그는 파멸을 마다치 않고 허깨비를 쫓아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 허망한 진실을 철판으로 형상화했다. 홀연히 지나간 듯 철판에 그 흔적만 남긴 사랑의 실루엣은 ‘텅 빈 중심’처럼 그 실체가 없는 허상이다.

◆빛의 에젠

▲ 빛의 에젠. ⓒ천지일보(뉴스천지)

회화와 더불어 사진, 영상 등으로 매체를 확장하는 그의 예술은 조명으로까지 이어진다. 유리구슬을 통과한 빛들은 꿈결같은 세계를 보여준다.

◆고산자

▲ 고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김정호의 생애를 담은 고산자 작품을 안종연은 나이테가 있는 나무에 작업을 했다. 그는 나이테가 있는 나무 자체가 시간의 흔적을 보여줄 뿐 아니라 김정호의 일생을 담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으로 나무에 드로잉 작업을 물감이 아닌 인두로 작업했다. 이 밖에도 목재와 철재를 이용해 만든 그의 공공설치 작품도 사진에 담겨 이번에 함께 전시됐다.

▲ 제주도 섭지코지 피닉스 아일랜드 건물 내부에 설치한 광풍제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국립암센터에 설치된 작품 <빛의 소리>. 스테인리스 스틸, 유리, 크리스털 캐스팅 등으로 만들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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