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 라디오엠에서 본지는 천성일 감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제공: 올댓시네마)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카메라가 저 끝에서부터 쭉 훑으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 있고 그 끝에 깃발 하나 들고 전쟁 영웅이 감격에 찬 표정을 짓잖아요. 그런데, 우리 영화는 그 전쟁 영웅 곁에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드라마를 다뤘죠. 힘없이 쓰러져 있는 것 같지만 모두가 자신만의 드라마를 갖고 있잖아요. ‘서부전선’은 그 포인트에 더 집중한 작품이죠.”

충무로에 만능 이야기꾼이자 제작자인 그가 드디어 메가폰을 잡았다. 민초의 삶부터 평범한 군상들의 애환을 그릴 때마다 대중에게 큰 영감과 감동을 선사해 왔던 천성일 감독이 6.25전쟁의 휴전선포 3일전 남‧북한 쫄병들의 ‘웃픈’ 에피소드를 통해 전쟁의 폐해를 코믹하게 다룬 ‘서부전선’을 들고 스크린 점령에 나섰다.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근 카페에서 본지와 만난 천 감독은 일문일답을 통해 첫 영화 연출작인 ‘서부전선’에 대해서 작가 특유의 감칠맛 나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천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Q: 그동안 시나리오 작가, 영화 제작자로 활동했고 이번 ‘서부전선’ 통해서 감독으로 데뷔하게 됐다. 감회가 어떤가?

천 감독: 영화 개봉 전에 친분 있는 스님을 만났는데 ‘흥함도 없고 망함도 없어라’라고 말씀해 주셨다. 지금 딱 그 심정인 것 같다. 사실은 모든 것에 담담하려고 애쓰고 있는 상황이다.(웃음) 그동안 늘 진검승부를 해 왔다. 제작한 영화들 모두 개봉 당시 눈부신 작품들과 붙었다. 그래서 늘 자신 있으면서도 불안하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이 항상 교차되는 것 같아. 진인사 대천명! 하하.

Q: 전쟁영화지만 두 쫄병의 무사귀환 프로젝트라는 소재가 신선하다.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천 감독: 카메라가 이쪽부터 쭉 훑어서 수많은 사람이 죽고 깃발을 들고 있는 영웅 하나를 보여준다. 누워있는 병사들은 스쳐가는 사람들일 뿐인데, 그 사람들의 각각의 드라마가 잊혀지는 거잖아. 그들의 잊혀져가는 드라마에 애정이 가더라.

▲ 영화 ‘서부전선’ 스틸 컷.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Q: 민초의 삶, 쉽게 잊혀 지지만 강렬하게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천 감독: 그래서 ‘서부전선’ 속 군인들이 이름이 없다. ‘남복(설경구 분)’과 ‘영광(여진구 분)’은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름이 있는 것이지 이경영 씨 조차도 극중 이름이 없다. 마을 사람들도 그렇고. ‘서부전선’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Q: 남복과 영광이 유일하게 이름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천 감독: 남복과 영광에게 이름을 준 이유는,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관계가 맺어지는 거잖아. 그래서 전쟁터에서 유일하게 관계를 맺어나가는 사람들이라 이름이 생긴 것이다. 남복은 남쪽에서 복스럽게 사는 아이, 영광이는 내 친한친구 실명이다. 친구가 항상 자기 이름이 김영광인데 듣기만 해도 영광스럽지 않냐며 익살스럽게 말하곤 했었는데 이 부분을 영화에 삽입했다.

Q: 대형 스케일의 영화다. 그래서 전쟁 씬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잔잔한 휴먼 스토리가 강한 것 같다.

천 감독: 크게 드라마틱한 영화는 아니다. 그저 슬픔보다 ‘가슴 먹먹함’을 전달하고 싶었다. 원래 시나리오에 소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6.25관련 사진집을 보니까 소가 자주 등장하더라. 북한군도 군수품을 소로 많이 끌고 다니고 미군도 소 등에 타서 사진찍고 그러더라. 또 우리나라가 소랑 친밀하기도 하고. 그 시절 소 한 마리 있으면 성공한, 뭔가 든든한 것 있잖나. 우리와 밀접한 동물인 소를 영화에 넣으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전달하면서 가슴 먹먹함은 배가 된 것 같다.

▲ 영화 ‘서부전선’ 스틸 컷.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Q: 영화 속 남복이 귀찮다는 듯, 짜증난다는 듯 툭툭 던지는 대사가 의외로 의미가 많다

천 감독: 그만큼 살아온 사람이라서 그렇다. 캐릭터 자체가 말 한마디로 ‘세상은 이렇다’라고 평가를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회사에 부장님이 퇴근을 안 해서 집에 못가고 있는 만년 과장 있잖아, 회사 돌아가는 상황 뻔히 다 알고 쓸 때 없는 짓인데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는 만년 과장의 심경과 비슷한 톤이 남복이라고 보면 된다.(웃음) 또 ‘살아야 살 것 아니오’라는 대사는 그렇게 지식수준도 높지 않고 학력도 고학력이 아닌데 그런 사람이 삶에 대한 애착과 삶에 대한 정의를 어떤 단어로 내릴까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대사다. 남복은 뭔가 멋들어지고 고상한 말을 하진 않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 미치자 그런 대사가 나왔다.

Q: 영화 속 학도병인 영광과 나이가 같은 여진구, 전쟁에 나가서 온갖 고생하는 장면이 강한 임팩트로 다가오더라.

천 감독: 영광이와 진구, 극중 나이와 같아. ‘열여덟 살이면 이런 상황에서 어떨까’ 진구와 이야기 맞춰가면서 촬영하자 진구도 자연스럽게 영광과 같아 졌다. 마지막 엔딩 씬을 찍을 때는 진구도 그렇고 나도 많이 울었다. 진구 어머님도 현장에서 있었는데 그 장면은 못 보시겠다면서 안 보시더라. 엔딩 씬은 음악도 나오고 편집본으로 잘 꾸며졌지만 실제론 카메라만 있고 소 방울은 ‘딸랑 딸랑’ 수레는 ‘삐그덕 삐그덕’하는데 가슴이 먹먹하더라.

▲ 천성일 감독. (사진제공: 올댓시네마)
Q: 각본가, 제작자, 이제는 감독으로 새로운 커리어를 개척한 지금의 심경은 어떤가? 그리고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천 감독: 마치 어느 한 쪽에서 굉장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이것저것 해본 상황 같다.(웃음)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를 해 본 것이 아니니까. 영화도 지금까지의 경험치 빼고는 제로에서부터 시작한 거다. 모든 것이 처음에서 시작하는 것인데, 그동안 각본도 제작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라 지금 감독을 하면서 ‘처음 시작하는 것에 겁낼 필요는 없다’라는 마음은 생겼다. 앞으로의 계획은 ‘해적2’ 시나리오 쓸 것이 있다.

한편 천성일 감독 연출, 설경구 여진구 주연의 영화 ‘서부전선’은 지난달 24일 개봉해 절찬 상영 중이다.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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