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바대로 새해 벽두부터 온 지구촌은 아비규환(阿鼻叫喚)이다. 그야말로 백호의 기운이 강하긴 강한가 보다. 기후의 변화와 지각 변동으로 인해 홍수와 눈사태 그리고 지진이 온 지구를 강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200여 년만의 최악의 강진이 12일 오후 카리브해의 작고 가난한 나라 아이티에서 발생하므로 세계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진앙지가 인접했던 관계로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폐허가 되었고, 대통령궁도, 노트르담 아이티 성당의 붕괴로 대주교의 목숨까지 앗아갔으며, 국회의사당도 무너져 상원 의장도 매몰됐다. 핵폭탄보다 더 큰 위력의 재앙으로 사망자 수는 수십만 명이라 하지만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한다.

이럴 때일수록 겸손해야 한다. 인간의 생각과 능력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자연의 섭리 앞엔 속수무책임을 깨닫게 한다. 역리(逆理)를 버리고 빨리 순리와 진리 앞에 순복하라는 경고는 아닌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땅 위의 기상과 땅 밑의 지각이 제자리와 제 역할을 위해 맹렬히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인류는 새로운 역학구도로 새 판을 짜기 위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치밀하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앞에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운가를 짚어 볼 필요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질서의 긍정적 주도권을 위해 크고 넓고 높은 시야가 요구되는 시점에 당리당략의 아둔함 속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정치현실이 지각 있는 백성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약 600년 전 미래의 선진문화대국을 예견하고 가장 위대한 업적과 실질적 유산을 남긴 세종대왕의 이름이 오늘날 무지한 정치 후손들에 의해 온갖 수모와 모욕거리가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금번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 일련의 사태에 대해 필자의 소견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정치의 생명은 신뢰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신뢰가 무너지면 정치의 생명도 끝이다. 이명박 정부의 약속 불이행으로 인해 다시 한 약속은 또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대두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서의 예를 들어 이해를 돕고자 한다. 하나님을 앙망(仰望)하는 이유는 약속하신 그 약속들을 반드시 그대로 이루고 지키시기에 믿는 것이고 또 경외하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사안은 양대 정권과 국회법 그리고 전문가들에 의해 결정된 사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아무리 미숙하고 잘못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수정이야 가능하겠으나, 근본적으로 정권의 힘의 논리에 의해 법과 약속이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신도시에 사람을 모으는 일도 정책에 의해 억지로 모여든 구성원은 맞지 않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도시의 구성원은 각자의 필요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억지로 모여든 구성원으로선 진정한 그 도시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굳이 ‘세종시’란 이름으로 도시명을 정한다면 세종대왕의 업적과 그 분의 정신에 맞게 교육과 과학의 발전적 전문도시와 그 정책을 계획대로 추진해 갈 수 있도록 교육과 과학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행정부처 또한 이전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행정의 분산으로 인한 역기능은 하나씩 업무의 효율성을 찾아보면 되는 것이고, 또한 ‘세종시’란 도시명과 그 도시의 역할은 자연스레 일치하고 어울릴 것이다.

행정의 분산은 무조건 안 된다는 선을 그어 놓은 상태에선 대화도 타협도 나아가 해답도 없다. 차라리 원안을 좀 수정하면 어떻겠냐는 설득이 원칙이라면, 현 정부의 작금의 행보는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통합은 외치면서 이면적으로 분열을 조장하는 격이며, 그 통합의 진정성을 국민들로부터 의심받게 될 것이란 충고를 하고 싶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현 정부는 잘 견디고 국익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노력해온 과업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현명한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는 지금 대외적으로도 머리를 맞대고 준비하고 진행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지 않은가. 지도자와 정부가 스스로 대내적으로 끝없는 소모적 논쟁으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대외적인 사안에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있는 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민본주의(民本主義)다. 즉, 국민의 이익과 행복의 증진을 근본이념으로 하는 나라다. 백성의 행복이 과연 무엇이고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를 고민하는 지도자와 정부가 필요한 것이다. 백성을 가르치려만 해선 안 되고 때론 백성에게 배우고 들어야 한다는 진리를 경히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덧붙일 것은 신뢰가 아무리 중요하다고는 하나 그 ‘신뢰’의 정당성을 앞세워 대안도 정책도 없이 단순정치논리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거나, 또 기회다 싶으면 국민을 여론몰이의 희생양으로 삼아 거리집회 거리정치로 혼란케 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는 충고 또한 하고 싶다.

이젠 정치논리를 앞세워 수단과 방법을 동원,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정치철학은 구시대의 유물임을 밝히는 바이다. 냉정하게 보고 판단하는 가장 현명하고 위대한 백성이 이 나라의 주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것을 바로 깨닫고 행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백성을 리드해 나갈 수 있는 이 시대의 합당한 정치논리가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현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가와 국민과 지역과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 그 길을 걷는 것이 참다운 애국이요 진정한 용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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