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産道)
이순희

때때로
우두둑 부서지고 깨져
한 귀퉁이 간신히 뵙게 되는 

혹독한 열반 

언제나
시(詩)의 산도(産道)가 좁다.

[시평] 
 
‘산도(産道)’라는 다소 낯선 낱말의 사전적 정의는 ‘분만 때 태아와 태아에 딸려 있는 여러 물질이 통과하는 통로. 곧 산모의 생식기 일부(一部)’이다. 이 산도를 거쳐야 만이 아기는 이 세상에 비로소 태어난다. 어머니 자궁에서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것은 이제 그 자궁이 너무나 좁아서 더 이상 그 안에서는 살 수가 없어 나오는 것이라는 설도 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나의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나의 안에 자리하기에는 그 안이 너무나 작고 좁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안을 박차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리라. 마치 샘이 솟고 솟아서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밖으로 넘쳐나듯이. 솟아나는 내 안의 열망이 넘쳐나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오는 것처럼.

그러나 이렇듯 밖으로 나오는 통로는 늘 좁디좁은 것. 솟아나고픈 욕망은 넘치고 넘치는데, 통로는 좁고 좁아 어려운 간난의 시간을 보내야만, 비로소 나올 수 있는 밖의 세상. 마치 혹독한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듯, 고난의 시간을 지내야만이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광활한 세상.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하는 모든 산도, 산도는 좁은 것 아니겠는가. 좁은, 그래서 통과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고 나, 도달하는 것. 이가 진정한 도달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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