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공무원이 되려는 취업 준비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뽑는 신규 공무원 수가 2만 2000명 정도인데, 채용 인원의 10배가 되는 22만여명이 시험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경쟁률이 10배라는 뜻은 아니다. 시기적으로 분산 실시되는 시험에서 준비생들이 여러 번 응시하다보니 경쟁률이 상당한데, 지난 6월 실시한 서울시 공채에서 56.9 대 1을 보였고, 8월 예정인 국가직 7급 공채는 81.9 대 1을 보이고 있다. 한 시험장에 40명이 입실한다고 쳐도 두 개 교실 응시생 가운데 합격자가 한명 꼴이니 정말 하늘의 별따기다.

통계청 조사에서 청년층(15∼29세) 비경제활동 인구 중 취업준비자 63만 3000명 가운데 공무원시험 준비를 한다는 답변자가 34.9%에 이른다. 지난해 28%보다 더 높아진 수치로 취업 준비생들의 공무원 선호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공무원 인기가 높은 것은 무엇보다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이라는 데에 취준생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보수도 70∼80년대 과거의 박봉과는 달리 후한 편으로 2014년도를 기준으로 보면, 100인 이상 민간기업체 직원 임금의 84.3%에 달하다보니 적지 않는 봉급이다.

공무원이란 직업이 취직이 안 된 청년층이나 직장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큰 매력으로 대두되는 요즘, 우리나라 공무원 연수기관 중 최고급인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웃음거리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지난 7월 15일, 이미 공무원 신분으로서 기초교육을 받고 있는 신임 사무관 과정 521명에게 130분 동안 특강을 했고, 강연을 마친 이 처장이 자신의 강의시간 내내 엎드려 잔 교육생을 찾아내라는 지시가 발단이 됐다.

교육대상자는 지난 4월 13일 입교해 오는 9월 11일 수료하는 신임 관리자들이다. 다시 말하면 5급 공채합격자 403명과 민간경력자 중 5급 일괄채용시험에서 뽑힌 엘리트들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공무원이 되는 길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듯 어려운 현실에서 9급이나 7급이 아닌 단번에 ‘사무관’ 호칭을 받는 5급 공무원들이 교육받는 교육장에서, 그것도 공무원 제도·관리를 총괄하는 최고 직위에 있는 인사혁신처장의 특강 시간에 연수생이 잤다는 것은 통상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흔한 일이 아닌데, 처장이 직접 지시까지 했으니 상황이 어떠했으랴.

이근면 처장이 누구인가?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는 1976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2009년 삼성광통신 대표이사가 됐고, 2014년 11월까지 광통신 고문으로 재직했다. 세월호 사고 여파로 정부조직이 변경돼 인사혁신처가 만들어진 2014년 11월, 박근혜 정부의 초대 인사혁신처장(차관급)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삼성그룹 내 기업의 인사 부분에서 잔뼈가 굵은 민간인인 그가 107만 공무원 사회를 혁신하는 사명을 부여받았으니 성과를 벌여야 할 판이었다.

“연단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오른쪽 뒤편에 앉아 있던 여자 교육생이 엎드려 잤다. 긴 머리에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찾으라.” 처장의 색출 지시를 받은 교육원 측이 교육생들에게 협조를 구해 찾아보았으나 성과가 없어 “못 찾았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인사혁신처에서는 한 수 더 떠서 “CCTV로 찾으라”는 바람에 지켜보던 교육생 자치회가 들고 일어났는데, 교육생들은 이 처장의 색출 지시에 일종의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해프닝과 관련된 여러 정황들을 종합해볼 때 일벌백계 차원에서 교육생을 징계하기 위해 찾아내려는 의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서 끝났으면 괜찮았겠지만 해프닝은 더 이어졌다. 이근면 처장의 지시에 대해 너무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자, 바로 다음날 이 처장이 TV조선 종편 방송에 나가 해명을 했다. 그는 “세금으로 양성되는 고위 공무원은 갖춰야 할 소양이 필요하다. … 조직의 기본적인 철학과 사상을 배울 수 있는 시간에 엎드려 잔 것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하면서 해당 교육생을 찾으라고 한 것은 ‘정당한 지시’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무원 신입 연수원 과정은 그 과정에 따라 퇴교 조치까지 가능하지만, 주의를 주는 정도는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신임 관리자들은 22주 교육을 마쳐야 사무관시보로 발령 나므로 연수기간 중 간부공무원으로서 소양과 능력을 갖추는 게 당연한데, 알 수는 없으나 그 교육생은 여성이기에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차관급 정부관리가 여론이 좋지 않자 마치 교육생이 걱정이 돼 경위를 파악하게 했다 변명하기 위해, 또 어떻게 보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느라 공무로 바쁜 시간에 종편에 나와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보기가 안 좋다. 권위주의를 혁파할 책임이 있는 인사혁신처장이 공직사회에서 버려야 할 폐단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색출을 지시하고 자기 변명할 그 시간에 진정한 국민의 봉사자 되기를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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