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27% “계약서 미작성”
비정규직·5인 미만 더 심해
채용절차법 30인 이상만 적용
“사각 해소 위해 법 개정해야”

갑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갑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1. 정규직 채용공고를 보고 입사했습니다. 수습 3개월간은 계약직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수습이 끝나면 정규직으로 다시 작성한다고 해서 동의했는데, 그 기간이 끝나자 해고를 당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정규직으로 입사한 거라 내일채움공제를 가입하려고 했거든요.

#2. 학원 강사 채용공고에 최소 연봉이 기재돼 있었지만 부족한 경력을 이유로 그보다 낮게 책정됐습니다. 게다가 공고에 출퇴근 시간이 적혀 있었으나 출근한 이후 밤 11시 이전에 퇴근해본 적이 없고요. 원장은 주말에도 집에서 일할 분량을 줍니다. 심지어 계약서에는 시험 기간에 3주간 주말 내내 출근해야 한다고 돼 있더라고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채용 관련 사례들 대부분은 그 원인이 ‘사장의 갑질’인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공고와는 다른 자리나 다른 액수의 임금이라든지 아예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않고 일을 시키는 경우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채용절차법 제4조(거짓 채용 광고 등의 금지)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 광고의 내용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해선 안 된다’ ‘구직자를 채용한 후에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 광고에서 제시한 근로조건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해선 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17조에는 임금·노동시간·휴일·휴가·업무 등이 명시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교부하도록 돼 있다. 이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행법과 달리 근로계약서를 받지 못한 노동자가 27%에 달했다. 직장갑질119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7일부터 14일까지 진행한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다. 비정규직(36.2%), 5인 미만(52.5%), 저임금노동자(49.2%)의 경우에는 모두 평균보다도 많은 수가 계약서를 받지 못했다.

김유경 노무사는 “취업 예정 노동자들은 입사 과정에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용자에 대해 철저하게 ‘을’의 위치에 있다”며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정면으로 문제 제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갑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갑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채용 갑질 전면조사 나서야”

#3. 해고를 당했습니다. 급여명세서도 못 받았고 근로계약서도 없고요. 미교부로 신고했더니 회사가 시정조치를 한다고 이제라도 주면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이미 해고됐고 못 받은 지가 한참 됐는데… 이게 맞는 건가요.

#4. 대기업에서 파견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채용공고에서 파견 1년+1년 총 2년 후 근무 후 정규직 전환이라고 해 입사했는데 1년 계약이 만료되고 잘라버리는 경우 아무 문제가 없는 건가요. 연장 시 근로자는 아무런 과실이 없는 데다 평가에도 문제가 없는데 회사에서 출산휴가 복귀자가 있다고 계약 해지하려 하더라고요.

현재 채용 갑질을 방지할 근거가 되는 ‘채용절차법’은 3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례들처럼 현행법상 신고를 해도 과태료만 부과되고 있다.

더군다나 채용공고와 다르게 계약서에서 3.3%를 떼는 프리랜서 계약을 강요하거나, 4대 보험에 가입해주지 않는 사업장 사례도 보고된다. 어떤 사업장은 의무로 돼 있는 근로계약서를 아예 안 쓰기도 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작은 직장이라도 취업하는 게 당장 간절한 취준생들에게 현행 채용절차법은 제대로 된 보호 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는데, 채용 갑질을 막아줄 수 있는 채용절차법 보완이 필요하다”며 “또 정부는 사용자 채용 갑질 신고를 받는 ‘익명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등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현행 채용절차법은 3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고 있다. 채용 갑질이 빈번한 소규모 사업장이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만큼 채용절차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보다 앞서 정부가 사장의 채용 갑질 사례를 근절하기 위해 조사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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