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과의 전쟁 중인 나라 대한민국이다. 군(軍)은 한 나라를 지키지만 국경이 없는 질병은 글로벌하기에 세계적 차원에서 사전 대비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신종플루, 사스, 에볼라 등 세계적 질병이 유행할 때마다 세계 최고의 의료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나라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의 침공으로부터는 무능과 무기력의 극치를 보이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9일 현재 격리자가 3000여명에 육박하며, 격리 해제된 사람도 600명이 넘고 있으며, 확진자는 95명에 이르고 있으니 이는 초동 방역의 완전한 실패다. 보건 당국과 유럽질병통제센터(ECDC) 통계에 따르면 이 같은 수치는 사우디아라비아 확진자 1026명에 이어 한국이 세계 2위의 메르스 발병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셈이다.

도대체 슈퍼 확산이 된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먼저 국내 병원 환경이 문제라고 진단하고 있다. 가장 많은 환자를 낸 평택 성모병원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병상 내부구조에 바이러스를 배출시킬 환기구가 없었다는 것이 바이러스의 생존력을 높이는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수많은 환자들이 응급실에 대기해야 하는 우리나라 병원의 특수성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또 전통적인 가족단위 병간호와 문병 문화도 확산을 부추긴 심각한 원인이 됐다. 면역력이 약한 고령 환자가 많았던 점도 악재로 작용했으며, 감염 병원을 제때 공개하지 않은 것이 중요한 원인이라는 뒤늦은 자책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원인은 따로 있었다. 1년 전 세월호의 충격과 아픔이 준 교훈은 어디로 가고 재난으로부터 위기관리능력은 부재했고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으며, 오히려 퇴보했다. 다시는 제2의 세월호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정부조직까지 개편하며 국민안전처까지 신설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게 됐다. 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으니, 어느덧 뒷북 행정의 선수가 돼 있다.

지도력이나 통치력은 평상시에는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조직이나 나라에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비로소 그 능력이 나타나게 돼 있다. 이를 흔히 위기관리능력이라고도 말한다. 재난이 거듭 찾아와도 컨트롤타워 없이 우왕좌왕하고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뒷북 행정은 여전했으며, 과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요인으로 남게 됐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풍토병과 변이와 대유행할 확률은 낮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또 확진자 중 3명이 완치돼 퇴원했다. 이 같은 결과는 치료제가 없는 것이지 치료가 안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것이라 고무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이러한 현실을 놓고 볼 때, 자신들을 희생해 가며 치료와 치료제 개발에 여념이 없는 의료인들을 향해 무조건 비난만 앞세워도 안 된다.

이제라도 정부는 민관군이 하나 된 위기관리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함으로써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정치권은 평상시에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겠지만 위기의 재난 앞에서는 자제해야 한다. 위기관리통합시스템에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진정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점을 절대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나아가 국민들은 그래도 정부를 믿어야 하며, 정부를 믿지 못하는 불신은 국민들만 손해라는 사실도 함께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병원공개가 빨랐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뒤로 하고 이제는 민관이 하나 돼 위기로부터 벗어나는 일에 지혜를 모으고 동참하는 슬기로운 국민의 모습을 대내외에 과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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