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고기를 오래 두고 아껴가며 먹을 수 있는 쉬운 방법으로 건조라는 과정을 거친 ‘말린 고기’가 있다. 요즘은 집집마다 냉장고가 있어서 아무 때나 고기를 꺼내어 쓸 수 있지만 옛날에는 고기를 구워 먹든, 삶아서 고아 먹든, 지지고 볶거나 구워 먹든, 오래 보존할 수 없어서 가급적 빨리 먹어 치워야 했다. 그러나 고기를 말려서 건조한 상태로 보관하면 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말린 고기를 ‘육포(肉脯)’라고 하는데, 옛날 먼 길을 떠날 때 들고 다니며 먹던 일종의 인스턴트식품이다. 더구나 농사에 꼭 필요한 일소(力牛)라서 소의 사사로운 도축을 못하던 시절, 가장 귀한 음식이었던 소고기는 말렸다가 오래 두고 먹을 수밖에 없었다.

포(脯)는 물고기를 잡거나 사냥을 하던 원시(수렵)시대에 먹고 남은 고기를 높은데 걸어 놓으면 자연 건조되어 오랫동안 두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터득했을 것이다.

육포는 건조하게 말려 진 상태이므로 저장성이 좋아서 쇠고기를 조각조각 떠서 소금을 뿌리고 볕에 말린 산포(散脯)의 경우 괴나리봇짐을 메고 먼 길 떠날 때, 요긴한 식량이 되기도 한다.

고기를 얇게 저며서 말린 포수(脯脩)는 먼 옛날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사람이 마련해 갔던 말린 음식이라 한다. 육포라 하면 으레 소고기 말린 것을 뜻한다. 제사상에 소고기가 빠지면 격식에 어긋난 것으로 알았던 사반(士班) 사회에서 육포는 필수였다.

그러나 고기가 귀하던 시절에는 저포(猪脯, 돼지고기 말린 것)·마포(馬脯, 말고기 말린 것)· 구포(狗脯, 개고기 말린 것)나, 산짐승이 흔해서 녹포(鹿脯, 사슴고기말린 것)· 노루포(獐脯, 노루고기 말린 것)· 치포(雉脯, 꿩고기 말린 것)를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특히 녹포(鹿脯)를 제일로 쳤다.

‘마포(馬脯)’는 고려 말엽에 몽고말을 기르는 목장이 제주도에 설치된 후로 말고기를 먹기 시작하여 말고기 육포가 생겨나서 점차 나라에 바치는 진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진상을 빙자한 관리들의 수탈이 심해지자 1401년 조정에서는 ‘마포’의 진상을 금지하게 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어포(魚脯)’는 짐승고기 대신 비린내가 비교적 적은 생선 흰 살을 얇게 저며 만든 것이다. 조선시대 국가적으로 교육을 장려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국왕이 양사비(養士費)라는 명목으로 하사하는 전토(田土)∙미포(米布)∙ 시장(柴場, 땔나무)∙금전(金錢)과 함께 어포(魚脯)∙를 하사 하였으며, 서적 등을 베풀었다.

육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은 물론 서양에도 모두 있어서 저마다 특유한 맛과 향을 자랑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포(脯)’를 ‘수(脩)’라고도 한다. 그런데 한자의 수(脩)는 ‘人’의 부가 아니라 ‘육(肉)’의 부에 속하며, 본래의 의미는 ‘말린 고기’였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포(脯)’와 ‘수(脩)’는 차이가 있다.

중국에서는 고기를 말려서 얇게 갈라낸 것을 ‘수(脩)’라 하고, 이것을 두들겨서 생강과 계피가루·향신료로 맛을 낸 것을 ‘포(脯)’라고 한다. 때로는 ‘수(脩)’가 ‘수(修)’의 뜻을 갖기도 하는데, 이것은 ‘수(脩)’라는 말린 고기가 가공이라는 과정을 거침으로서 물건을 가공하거나 정돈하는 것을 말하는 ‘수(修)’와 의미가 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글자를 사용한 숙어로 ‘속수(束脩)’가 있다. ‘속수’는 글자 그대로 ‘다발로 묶은 말린 고기’이며, 열 개가 ‘한 속(束)’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