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방송사 중에는 기독교를 대표하는 방송사도 있다. 하지만 기독방송이라는 이름만 가졌지 실제로는 기득권을 가진 보수교단의 시녀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시대의 종교 나아가 기독교의 부패와 타락과 함께 그들이 내세우는 전통과 역사는 빛바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방송이 기독교의 부패와 타락을 견인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시청률은 민망하게도 1%대에 머무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1%대의 시청률을 만회하고자 방송 보도의 기본을 무시한 ‘딜(거래)’ 즉, 한 쪽은 시청률을 높여주는 대신 성도와 돈을 지키고, 한 쪽은 시청률 확보를 전제로 한 거짓 왜곡된 내용을 기획 보도해 줌으로 돈을 챙기며 방송을 연명해 가는 절묘한 타협이 이루어져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약 9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기독교 방송사, 그 방송사와 이해관계에 있는 한국기독교의 기득권을 가진 보수교단들과의 특수한 관계를 얘기하는 것이며, 진실 보도와 공공성과 공정성이라는 방송의 절대적 본질을 억지로 망각하고 있는 행태를 꼬집고자 하는 것이다.

이 방송사는 천 갈래 만 갈래 갈라져 있는 한국기독교 교단 중 나름의 권력과 돈을 힘으로 여기는 몇몇의 전통보수교단의 지원하에 운영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보도 편성과 운영은 방송 본연의 역할을 벗어나 교단의 논리와 유익에 충실할 수밖에 없고, 나아가 방송 보도 윤리기준에도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독교 복음 전파의 거룩한 사명은 물론 기독교의 정신과 교리와 정의와 진실을 기대하기엔 애초부터 무리였다.

신앙 안에서 돈이 권력이 되고 명예가 되어 이러한 방송까지 그 권력으로 자신들의 거짓과 부패와 타락성을 감추고 포장하며 외려 정당화시켜나가는 절대적 도구로 전락시켜 놓은 것이다. 경(經)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눅 16:14)”고 기록돼 있다면, 오늘날 종교지도자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바리새인들이 되어 종교를 좀먹으며 세상까지 타락시키고 있는 부패와 타락의 주범이 돼 버렸다는 사실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 방송사는 운영돼야 하고 그 직원들은 생계유지라는 굴레 속에서 돈과 종교권력 앞에 굴복하니, 기독교의 정의는 이미 이 같은 먹이사슬에 의해 그 이름이 무색해진 지 오래다.

방송 보도는 사전 취재라는 과정이 전제돼야 하며, 그 전제가 되는 취재는 팩트(사실)를 찾아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라야 보도의 기준을 충족하며 보도의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또 그 결과로 인해 나타나는 판단은 기획자 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의 몫이 돼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송과 보도의 본질적 역할과 기능이 유기적 관계 속에서 건전하게 살아있을 때 우리는 그 보도를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팩트에 대한 진실 여부는 쌍방 내지 시청자가 아닌 기획자의 일방적 논리와 판단으로 인해 이미 결론 내려진다. 그리고 결론 내려진 사안에 대해 취재기자가 아닌 기획권을 가진 프로듀서들에 의해 기획 취재되고 나아가 기획 보도되고 있으니 그 보도는 죽은 보도요 시청자들을 우롱하고 기망하는 거짓보도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팩트에 대한 사실취재는 취재기자가, 기획과 제작은 프로듀서가 담당해야 하는 고유기능마저 사라져버린 방송 보도의 현실, 거기에 신앙의 조직이라기보다 보수권력단체로 세상화돼버린 몇몇 전통보수교단에 의해 조종 받고 있는 이 같은 기독방송사의 보도 행태는 이미 보도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교회를 지켜주겠다며 거짓 기획보도를 일삼는 기독방송은 실로 교회를 위해서인가. 또 교회 교인을 잃지 않으려 기독방송과의 음모에 가까운 타협이 과연 교인들의 영혼을 염려해서인가. 교인의 수가 곧 돈이 되고 권력이 되고 자신을 지키고 나타내는 명예가 돼 버린 종교 현실을 보고 있다. 진실된 보도는 의도대로 기획된 일방적 내용이 아니라 합리적 취재에 의해 쌍방의 입장이 전달되고, 시청자가 판단하는 건강한 방송 보도라야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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