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했던 한 해가 가고 있다. 섭리 가운데 새해가 문턱에 와 서 있다. 다사다난(多事多難) 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스치고 지나갔으며 지금 이 순간도 그리하고 있다. 

서양 속담엔 ‘폭풍이 지난 뒤에는 고요가 온다(After a storm comes a calm)’는 말이 있다. 정말 그리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역사는 그리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 속담이 이치라면 정말 ‘고요’라는 미래가 준비되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도 저버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역사의 수레바퀴는 정녕 무엇인가를 향해 달음질하고 있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 멀지 않은 지난 인물 가운데 탄허스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우주만물이 비뚤어져 있고 잘못되어져 있기에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의 변화가 필요하고, 지각변동과 기후변화로 인한 새로운 우주의 질서가 반드시 필요하고 또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고다. 그 말이 참이라면 그 때까지 불가불 많은 혼란과 혼돈의 역사는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지난 선인들이 미리 남긴 구전(口傳)들의 결론은 이 지구의 종말이 아니요 오히려 새로운 새 세계가 우리 앞에 전개될 것이란 강한 희망의 메시지가 숨어있음도 생각해 봤으면 한다.

즉,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의미다. 이 대목에서 성서의 말씀을 잠시 인용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그리고 성서의 결론은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하시더니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라고 하시면서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라는 말씀으로 끝이 나고 있음을 경이롭게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에게도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말이 아주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바로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대문마다 거리마다 붙어 있었으나 요즘은 교회나 가야 붙어 있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글귀다. 단순히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는 데 그치는 말은 아닐 게다. 그 말엔 우리가 깨달아야 할 깊은 사상이 있음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저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달 마지막 날이 아니다. 세월은 사람의 사정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오직 절대자의 작정하심 속에서 그렇게 가고 있을 뿐이다. 이 때 우리가 분별코자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한 해가 가고 오는 것에 관심을 갖기보다 무엇인가를 계획하신 그 분께서 진정 보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고, 새로이 맞이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일상적인 한 해가 가고 오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일깨우고자 한다는 데 있음을 깨달았으면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묵은 시대가 아니다. 새로이 오는 시대를 맞이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다. 그리고 그 오는 해는 눈에 보이는 해가 아니요 깨달음과 겸손의 눈으로 봐야 보이는 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묵은 해 오는 해를 논하고 있지만 저 창공에 떠 있는 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그대로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 알 것은 송구영신은 태양의 이야기도 아니고 세월의 이야기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답을 찾는 이만이 참된 송구와 영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세인들의 입에서 ‘말세 또는 말세 중의 말세(말세지말)다’라는 말도 흔히 들을 수 있는 시대다. 민심이 천심이란 말처럼 민간에 떠도는 그 말이 곧 하늘의 뜻이고 결론이란 의미다. 하늘에 떠 있는 해도 달도 별도 그대로인데 무엇이 그럼 말세란 말인가. 그것은 종교세계의 종말을 의미한다.

옛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말하기를 말세가 되면 혼돈(混沌)의 세상이 되며, 이 혼돈의 세상은 모두가 종귀자(從鬼者)가 된다는 뜻이다. 즉, 구원을 주는 자의 말 대신 귀신의 말을 옳다고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곧 종교세계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종말은 끝을 위한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끝이니 어서 빨리 송구하고 영신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또 있다. 그 도래할 세계는 그렇게 바로 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으니 분명 마귀의 발악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이겨낸다면 우리 앞엔 무릉도원이 펼쳐질 것이다.

결코 자연계의 종말이 아니다. 오히려 지구촌은 더 아름다워지고 살기 좋은 새 세계가 기다릴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정신이다. 이 정신은 곧 종교(宗敎)다. ‘으뜸가는 가르침’이라는 종교의 뜻에서 볼 수 있듯이 혼탁하고 어두워진 이 말세의 기운을 최고의 가르침인 종교로만이 해결이 가능하며 또 진정한 송구영신의 그 날을 알려 올 수 있다는 사실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送舊迎新 好時節은 萬物苦待 新天新地의 運勢라.’ 송구영신은 지금까지 혼돈 속에 신음하던 우주 만물까지 고대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것은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新天新地의 세계니 인간은 물론 만물까지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해방되는 섭리가운데 펼쳐지는 역사적인 순간임을 이 한 해를 보내며 깨닫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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