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국체육대학 초빙교수

 
20여년 전이다. 필자가 일간지에서 체육부 기자로 활동할 때 정치부 기자선배와 담소를 한 적이 있다. 이 선배는 체육부 기자와 정치부 기자는 스타플레이어를 주로 만나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는 점에서 여러 취재파트 중에서 가장 닮았다고 말했다.

장관, 국회의원과 주요 당직자들을 주 취재원으로 하는 정치부 기자나 스타선수와 감독들을 주 취재대상으로 하는 체육부 기자는 취재형태와 기사형식 등에서 비슷한 면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 당시 체육부 기자로 있다가 정치부 기자로 가 활발한 취재활동을 했던 선배도 있어 이러한 주장을 실증해 주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스포츠 기자에서 정치부 기자를 거쳐 세계적인 칼럼니스트로 성공한 이들이 많다.  제임스 레스턴은 지방지 스포츠기자로 출발, AP통신 등을 거쳐 뉴욕타임스 기자로 스카우트 되어 세계적 기자가 돼 한때 필자를 비롯한 스포츠 기자 지망생들의 우상이었다.

올 7월 95세로 타계한 미국 방송의 전설적인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는 오클라호마 주립대 에서 정치경제학, 저널리즘을 공부하다 중퇴, 휴스턴 포스트, 오클라호마 주립대 스포츠기자를 거쳐 UP통신 기자로 일했으며 이후 1950년 CBS에 기자로 입사, 2년 만인 1962년 ‘CBS 이브닝 뉴스’의 앵커로 발탁되며 1981년까지 20여년간 CBS의 얼굴로 활약하기도 했다.

스포츠 기자에서 정치부 기자와 칼럼니스트, 명 앵커로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스포츠 현장에서 쌓은 문장력과 취재력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스포츠 기사의 특징은 보통 기사와는 달리 화려한 수식구나 형용사가 자주 등장한다. 기사를 풀어가는 방식도 특이하다. 단조로운 경기의 승부보다는 한 선수의 기록이나 경기 중 한 장면에서 시작하는 게 보통이며 문장도 단문으로 알기 쉽다.

스포츠 기자의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레스턴 등은 치밀한 논리전개와 보다 알기 쉬운 글로 명성을 얻었으며 정책수립가들이 감추려는 핵심을 들추어내 사실을 보도하는데 더 심혈을 기울였다.

스포츠 기자와 정치부 기자가 닮은 꼴이듯이 스포츠와 정치도 궁극적인 지향점은 같다는 얘기를 기자 사이에서는 자주 한다. 둘 다 대권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스포츠는 챔피언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정치는 대권고지를 노린다. 같이 최고 1등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포츠와 정치에서 정상에 선 이들은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스포츠 기자가 정치부 기자와 사뭇 비슷한 취재스타일을 갖고 있는 것도 정상에 선 스타들을 주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면도 분명히 있다. 정치는 세가 불리한 경우 ‘야합’이라는 인위적인 ‘무승부’가 있는데 반해 스포츠는 반드시 챔피언을 가려야 한다는 점이다. ‘3당 통합’ ‘철새 정치인’ ‘의원 빌려오기’ 등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존재하는 게 정치판이다.

허나 스포츠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난 경기를 할 경우 레드카드와 여론의 무서운 질타가 쏟아진다. 간혹 경기의 편의와 리그운영을 위해 무승부제도가 있기는 하나 대부분 종목들이 원칙적으로 무승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승부차기, 연장전 등으로 반드시 승부를 가려야 하며 승리를 절대 나눠가질 수는 없다. 

또 정치는 정부의 행위와 상호행동에 제약을 받으나 스포츠 룰은 국가 간 정치적 영역을 넘어서 세계화 과정과 연결돼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글로벌 종목인 축구의 경우 영국 노동자와 학생, 선생들이 남아메리카에 소개했으며 영국 군인과 선교사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영국 식민지들에 19세기 무렵 이를 전파했다. 축구는 정치가 포함된 이주, 자본주의 확장, 제국주의와 식민화 등 일련의 글로벌화 과정 등을 통하여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아마도 사람들이 정치판에 식상해 하고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도 같은 환경에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만의 ‘공유영역’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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