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예로부터 속이 꽉 차서 실속이 있는 것을 “알토란같다”고 한다. 토란(土卵)의 원산지는 인도와 중국, 말레이시아 등 열대지방이며, 3000여 년 전부터 토란을 재배한 기록이 있다. ‘한서(漢書)’에는 토란을 우괴(芋魁)라고 기록해 놓았으며 ‘명의별록(名醫別錄)’에는 토우(土芋)라고 적혀 있고 종아법(種芽法)에는 우내(芋奶)라고 각각 기록돼 있다. 서기 506년에 저술된 제민요술(齊民要術)에 보면 그 당시 15개의 토란의 품종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보면 “우속수다(芋屬雖多), 유수한이종(有水旱二種). 한우산지가종(旱芋山地可種), 수우수전시지(水芋水田蒔之), 엽개상사(葉皆相似), 단수우미승(但水芋味勝), 경역가식(莖亦可食)”이라고 기록돼 있다.

다시 말하면 “비록 토란의 종류는 많지만 물속에서 재배하는 것과 밭에서 재배하는 두 종류가 있다. 다시 말하면 수종(水種)과 한종(旱種)이 있다. 한종은 산에서도 잘 자라며 수종토란은 논에 옮겨 심어 재배한다. 잎사귀의 모양은 수종토란이나 한종토란 모두 비슷하다. 단 수종토란의 맛이 한종토란의 맛보다 훨씬 낫다. 그리고 수종토란의 줄기는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토란은 ‘우(芋)’의 뿌리를 말한다. 우리 문헌은 고려 고종 때 강화 천도 기간(1232~1270) 중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편찬된 의서(醫書)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우(芋)’라는 식물이 등장하는데, 이 식물의 뿌리가 토란이다. 한자명으로 우자(芋子), 토지(土芝) 등으로도 불리고, 연잎같이 잎이 퍼졌다 해 토련(土蓮)이라고도 한다. 순조 때인 1882년에 간행된 김려(金鑢)의 ‘담정유고(藫庭遺藁)’에서 “토란은 흙 토(土)에 알 란(卵)자를 쓰니 땅에서 나는 계란이다”라고 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이 쓴 ‘산림경제(山林經濟)’ 구황(救荒) 편을 보면 “어느 절의 한 스님이 정성껏 기른 토란을 삶아 그것으로 담을 쌓았는데, 모두 기이하게 여겨 그를 손가락질했으나 그 후 큰 흉년이 들어 기근에 시달릴 때 그 절의 스님들은 토란으로 만든 벽을 먹으며 굶주림을 면했다고 한다”고 돼 있다.

토란을 잘랐을 때의 끈적끈적한 물질은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결합된 복합 다당체인 갈락탄(Galactan)이고, 위벽(胃壁)을 감싸면서 위산(胃酸)에 의한 손상을 일부 막아 주면서 장(腸)을 보호한다. 토란은 소화 촉진을 돕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추석에 과식한 사람에게 토란은 소화제 구실을 한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시골에서 토란국을 끓였다”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미뤄 고려시대 때 이미 토란국을 널리 먹은 것으로 보인다.

정약용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가 쓴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8월령에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 명절 쉬어보세. 신도주, 올벼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라는 구절이 나온다.

토란국을 만들 때는 먼저 토란 껍질을 둥글게 다듬듯이 깎아서 벗긴 후 쌀뜨물에 삶아 아린 맛과 미끈거리는 것을 제거한 다음 물에 헹구어 놓는다. 쇠고기 사태는 덩어리째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무는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겨 놓고 다시마도 물에 가볍게 씻어 준비한다. 냄비에 쇠고기 사태와 무, 다시마, 파, 마늘을 넣고 푹 끓인 다음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고 쇠고기와 무가 무르게 익으면 건져서 사방 3㎝ 크기로 납작하게 썰고 고기도 한 입 크기로 썬다. 다시마도 3㎝ 크기로 잘라 놓는다. 국물은 면 보자기에 대고 받쳐 맑게 걸러낸다. 고기와 무 썬 것을 한데 합해 간장과 다진 마늘, 깨소금으로 양념을 한다. 냄비에 맑게 걸러둔 고기국물과 멸치국물을 다시 부어 한소끔 끓으면 양념한 무와 고기, 다시마를 넣어 끓인다. 맛이 잘 어우러지면 간장과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토란국은 고기국물만 사용하기보다 멸치국물을 섞어 끓이면 국물 맛이 훨씬 시원해진다. 토란뿐 아니라 줄기인 우경(芋茎), 잎인 우엽(芋葉) 모두 식용으로 가능하다.

줄기인 우경 부분에는 뮤신이 없다보니, 위장 보호 작용은 없다. 대신 셀룰로오스나 펙틴 등 식이섬유가 매우 많기 때문에 콜레스테롤 흡수를 방해하고, 장의 활동을 도와 변비나 대장암 예방에 좋다. 다만, 섬유소가 많은 채소는 칼슘이나 철분 등 무기질 흡수를 방해하니까 적당히 먹는 것이 좋다.

토란으로 만든 떡을 ‘우병(芋餠)’이라고 한다. 우병은 연한 토란을 푹 무르도록 익힌 후, 꿀 속에 집어넣고 대나무 꼬챙이로 마구 찔러 꿀이 스며들게 한다. 그런 뒤에 밤가루나 잣가루를 고물로 묻혀 먹는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