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요청에 따라 아프간 재 파병이 결정되므로 교민과 파병 병력의 안전 위험이 현실화 됐다. 따라서 파병이 결정났음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예산안, 4대강 사업, 미디어 법, 세종 시 관련 등과 함께 태풍의 눈이 되어 연말 정국에 불어 닥칠 전망이다.

국제평화에 기여하고 국가 위상을 높이며 세계의 일원, 나아가 세계의 리더가 되기 위해선 교민과 파병 병력의 위험과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견해와 경제대국과 선진국을 논하며 자국의 입장만을 고수하는 비협조적인 국가로 낙인찍히느냐의 기로에서 쉽지 않게 내린 결정일 것이다.

뿐만이 아니라 실익과 명분의 부재와 2007년 8월 샘물교회 피랍사건이 남긴 교훈을 앞세운 재 파병 반대세력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생각하는 게 바람직할까, 그리고 어떤 결론을 얻어내야 할까.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진정한 국익일까. 당장 눈에 보이는 정의와 국익이 있겠으나, 당장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이면적으로 정의고 국익이 될 수도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행여 도움이 안된다 할지라도 때론 희생과 봉사의 차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민족 또한 무지와 아집과 미련함으로 바람 앞에 등불과도 같았던 시절을 벌써 잊지는 않았으리라. 아무런 조건 없이 고귀한 자국의 젊은이들을 이국만리 타국에서 피 흘리며 숨지게 한 16개 참전국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도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그들이 무슨 국익을 계산했던가. 그들이 무슨 정의를 생각했던가. 그저 인류의 평화를 지키려 했고, 고귀한 생명들이 이유 없이 죽어 가서는 안된다라는 가장 기본적이며 절대적인 가치 앞에 그저 순응했기에 아까운 청춘을 희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순국은 한민족(韓民族)의 역사 속에 길이 살아남아 있어야 하고, 또 반드시 그리 되어야 할 것이다.

사해합류(四海合流), 어느 언론인이 즐겨 찾는 표현이다. ‘세계는 하나다’ ‘세계가 잘 살아야 한국도 잘 살 수 있다’ 즉, 이 말은 작금 우리들의 이기적인 국가관에 일침을 가하고 또 일깨우고 있기에 인용해 본다.

그러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의 생존이 걸린 만큼 신변과 안전에 관해 찬찬히 따져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에는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이제 정말 중요한 것은 평화를 앞세운 팽창주의에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를 리드해 나갈 젊은이들을 맥없는 희생양이 되게 해서는 아니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과연 그 전쟁의 목적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하는 것이다. 나와 내편을 위해서 다른 편을 죽여야 하는 그런 전쟁에 우리 또한 어느 편에 속해 그와 같이 죽고 죽이고 빼앗아야 하는가를 말이다. 또 생각해 볼 것은 더 극렬한 전쟁만이 그리고 타 종족을 없애는 것만이 전쟁 종식의 해결 방안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지구가 하나이듯이 인류의 공동체인 세계 또한 하나이지 둘도 셋도 될 수 없으며, 그것이 현실로 우리 앞에 곧 펼쳐질 미래다. 그렇다면 인류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진정한 해답을 찾는 것이 또 다른 전쟁에 참여하고 양성하는 것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필자는 주문해 보는 것이다.

내 생각, 내 편만이 정의고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 나와 다르다고 이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한다는 이기적 논리에 우리도 편승해 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어떠한 기준과 가치관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함몰되어 있지는 않았는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젠 우리는 물론이고 세계가 옳고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그 기준을 제시하고, 앞장서 만들어가는 그러한 우리 한민족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면면이 흘러왔고 또 흘러갈 역사가 이 민족에게 주문하며 또 명령하고 있음을 인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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