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태동한 이래 아마 이처럼 복잡한 때는 익히 없었으리라. 미국과 구소련이 중심이 된 동서 냉전시대가 지나가고, 미국 주도형 시대가 유지되는 듯하다가 지금은 소위 G2시대가 찾아오면서 지구촌은 새 판짜기에 분주해졌다. 어쩌면 지금 세계는 새 판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세계질서는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주도 아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지돼 왔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은 이념은 물론 정치력과 외교력의 부실 나아가 경제성장의 둔화까지 겹치면서 세계질서를 이끄는 논리와 명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하며 그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로 인해 세계는 구석구석 자신들의 입지와 목소리가 분출되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때를 놓칠세라 소위 돈과 힘을 앞세운 중국이 목소리를 내며 그 틈새를 재빨리 파고들기 시작하자 세계는 갑자기 요동치고 있다.

지난 3~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이후, 2차 세계대전의 주범인 독일과 일본, 그중 독일 메르켈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며 경제 협력은 물론 전략적 동반관계를 과시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있기까지는 집단자위권 행사 등 극에 달한 아베 정권의 우경화가 한 몫 한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곧이어 아베 총리는 한중 정상회담에 맞장구라도 치듯이, 호주 등 오세아니아 순방길에 올랐다. 특히 호주를 방문한 아베 총리는 일본의 집단자위권 결정은 물론 중국 봉쇄전략에 토니 애벗 호주 총리의 동조를 얻어내며 보라는 듯 또 하나의 지형을 거침없이 구축해 나가고 있다.

한편 브라질에서 개최되는 제6차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시진핑 주석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 브라질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제이컵 주마 대통령과 정상회의를 갖는다. 사실상 라틴아메리카는 미국과 일본이 경제는 물론 금융 통화까지 선점했으나, 브릭스 5개국이 자체 개발은행 설립을 목적으로 협의서에 공동서명하게 된다면 미국 주도형 개발은행은 도전을 받게 되며, 나아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언급했듯이 힘이 이념이 되어왔던 모순된 세계가 이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안정과 평화라는 허울 속에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며 거짓된 세상을 주도해온 모순은 또 다른 모순을 낳으며 여기까지 명맥을 유지해 왔으나 이젠 그 한계를 드러내며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집단자위권 결정을 환영한 미국의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안정과 평화를 내세우며 세계질서를 유지해 오던 미국, 지금 한반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힘의 균형 내지 우위에서 밀리는 형국에 서자 일본으로 하여금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태도를 바꾸며, 안정과 평화에 사실상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는 1905년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로 하기 위해 일본으로 하여금 한반도의 침략을 허락 내지 묵인한 가쓰라-태프트 조약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외세에 의해 형성된 남북관계는 한미일 안보관계와 북중러라는 이론과 질서를 구축했고, 오늘날까지 마치 공식같이 당연히 여겨져 왔던 게 사실이다. 이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정당화시키는 구실이 돼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이 공식은 우리가 바라는 공식이 아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 공식이 깨어지기 시작하면서 한반도가 아닌 세계 지형이 요동치는 것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형성된 공식이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사적 모순의 근본엔 이처럼 세계의 중심인 한반도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살펴본 바와 같이 얽혀 있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첩경은 바로 열강들이 이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남북이 하나 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새롭게 짜여지는 세계 질서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패권이 아닌 인류의 공동의 가치인 진정한 평화 실현을 위해 구축돼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