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바쳐 나라 지킨 충무공 이순신

 

 

▲ 충무공 이순신. ⓒ천지일보(뉴스천지)

여수지방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독자적 행정구역에 속하진 못했지만 해양 연안 방위의 수군기지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초 왜적의 침략이 경상도뿐 아니라 전라도 지역까지 빈번해지자 전라도 해안 방비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이하 전라좌수영)을 좌우로 분할 개편함에 따라 서해안 진출 및 전라도 길목에 위치한 여수는 전라좌수영의 설치를 맞게 되어 폐영될 때까지 417년간 조선수군의 본거지로 활약했다.

또 전라좌수영에서 그 명성을 떨친 인물이 있으니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충무공은 조선 인종 원년에 서울 건천동(지금의 인현동)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덕수이고, 고려 중량장 이돈수의 12대손이며 부친은 이 정, 모친은 초계 변 씨이다.

32세 2월에 무과에 급제하고 4월 함경도 동구비보에 권관이 되었다가 47세 2월 진도 군수에 임명되었다. 허나 부임하기 직전 전라좌수사에 재임용된 후 3월에 왜적들이 반드시 올 것을 알고 새로 전선을 만드니 그 모양이 거북과 같아 ‘거북선’이라 불렀다.

또 거북선을 만든 ‘선소’는 사적 제392호로 지정됐으며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었던 곳이다.
이후 48세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무공은 부하들과 더불어 의논한 후 그 해 5월에 여수를 출발해 경상도 앞바다로 나가 옥포, 당포, 한산도, 부산 일대에서 각각 큰 승첩을 거두었다.

당대 최고의 전술과 전략으로 전쟁마다 승리를 이끈 충무공 이순신과 임진왜란에 참전한 군사들의 정신과 의의를 기념하는 관광지는 여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내 최대 단층 목조건물이며 남쪽의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진 ‘진남관’.

진남관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지휘부인 진해루가 정유재란 때 불타 버린 후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해인 1599년 그 터에 지은 75칸의 객사이다.

또 현존하는 전라좌수영의 건축물로도 유일해 국보 제304호로 지정됐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54세를 맞이한 11월에 새벽에 도망하는 왜적을 추격하다가 노량 앞바다에서 적탄에 맞아 전장에서 최후를 맞았다.

이에 조선 선조 34년에 여수에 세워진 충민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최초의 사액사당으로 자리잡았다. 통제사 이시언이 영의정 이항복의 계청을 받아 세워진 충민사는 선조가 직접 이름을 지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 손양원 목사. ⓒ천지일보(뉴스천지)

여수 애양원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사랑의 성자로 불리는 손양원 목사이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잘 알려진 ‘산돌 손양원 목사’는 한센병 환우들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했다. 1939년 7월 14일에 여수 애양원 교회로 부임한 손 목사는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부산지방을 돌면서 신사참배 반대를 외쳤다. 이로 인하여 경남 노회에서 순회 강도사 사역을 못하게 된다.

손 목사는 애양원 교회에 부임해서도 설교 때마다 신사참배 반대를 외쳤다. 1940년 9월 25일 손 목사는 두 형사에 의해 연행돼 옥고를 치렀다. 손 목사에게 적용된 죄는 신사참배 거부와 백성들을 선동했다는 것이다.

그는 8.15 해방과 함께 감옥에서 나오자 곧장 애양원교회를 찾았다. 그는 온 몸을 다해 한센병 환우들과 교우들을 섬기며 신앙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1948년 10월 25일, 여순 사건으로 두 아들이 잃게 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그는 동인·동신 형제를 죽인 안재선 학생을 손재선이라 하여 자신의 양아들로 삼는다.

손 목사는 재선이를 부산의 고려성경고등학교에 수학하도록 하여 전도사로 키워내는 놀라운 사랑의 역사를 보여줌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인 사랑의 계명을 몸소 실천한다.

1950년 뜻하지 않는 6.25동란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 목사는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돼 1950년 9월 28일 저녁 11시 여수 근교 미평에서 총살당하여 순교하게 된다.

당시 손 목사의 나이는 48세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교인들을 보호하고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총의 개머리판으로 입을 맞아 얼굴이 피투성이 되었으며 마지막 죽음의 자리에서 두 손 모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다가 공산군의 총에 맞아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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