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언론인·칼럼니스트

 
바다는 비극의 물길인가. 만경창파 무심하기만 한 바다엔 한과 눈물의 역사가 얼룩진다. 지금으로부터 730여 년 전 고려 원종시대 수만 명의 젊은 우리 청년이 일본 근역에서 바다에 빠져 숨지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일본을 정복하기 위한 고려와 원나라 연합군 전선들이 일기도에서 태풍을 만나 싸움 한 번 못하고 처참하게 침몰한 것이다. 이때 문신 연담(蓮潭) 곽예(郭預)는 감도해(感渡海)라는 시를 써 통곡한다.

‘바다 가득한 물에 뜬 시체에 원한의 기운이 맺혔네/(중략)/슬프다. 강남의 십만 병사들 절해고도에서 맨손으로 싸웠다오/이제 죽은 해골들 원한이 산만큼 높아/오랜 밤 영혼 하늘 향해 울부짖네(하략)’.
조선 초 새 왕조는 많은 고려 왕족을 강화도로 귀양 보내면서 배를 태워 보냈다. 그런데 도중 잠수부를 시켜 배에 구멍을 내게 하여 모두 침몰시켰다. 대부분 사람은 힘없이 빠져 죽었지만 헤엄쳐 나온 사람도 군사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배가 침몰할 당시 연안에 있던 한 스님이 물에 잠기는 배 안의 왕자를 보고도 손을 쓸 수 없었다. 스님은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만 흘렸다. 생육신 중 하나였던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은 목을 내놓고 비극적 보트(Boat) 살해 역사를 비밀리 기록한다.

태종 14년 여름 태안에서 초대형 해상 침몰사고가 발생했다. 전라도 세곡을 실은 조운선이 태안반도를 통과하다가 암초에 부딪혀 침몰한 것이다. 사망자는 수군 2백 명, 66척의 조운선과 배에 실린 곡식은 5800석이나 됐다.

한양 조정은 비통과 눈물로 가득 찼다. 이 사고는 수군도절제사가 서둘러 배를 출발시킨 것을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분노한 태종은 스스로 부덕을 반성하며 수군도절제사를 즉시 파직하고 의금부로 불러들였다. 수군도절제사가 얼마나 미웠던지 말을 타지 말고 걸어서 올라오라고 지시했다.

예부터 해난 사고가 많았던 진도(珍島). ‘보배로운 섬’이라고 불리는 이 섬에서 불린 아리랑을 ‘진도 아리랑’이라고 했다. 섬마을 사람의 정한(情恨)이 구절마다 절실히 녹아 있는 애가(哀歌)로 여러 아리랑 가운데 제일 슬프다.

진도에 내려오는 ‘씻김굿’도 슬픈 육자배기를 배경음으로 깔고 있다. 그래서 더욱 애절하게 와 닿는 것인가. ‘씻김’이란 생전에 못다 푼 망자의 한(限)을 씻기고 젖은 옷을 벗기고 마른 옷으로 갈아 입혀 극락으로 보낸다는 뜻이라고 한다. 바다에 빠져 죽은 이들을 건져 하늘로 보내기 위한 생자와 사자의 눈물겨운 이별식이라 엄숙하다. 무당도 흰옷을 입고 망자의 한을 풀어 주는 지전(紙錢)춤을 춘다. 한 많았던 진도사람의 노래와 춤, 굿에서는 이렇게 애절한 한이 묻어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진도는 눈물의 섬으로 변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지금 목이 쉰 유가족의 슬픔만큼 큰 아픔이 있을까. 침몰 직전 두 시간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꽃다운 어린 생명을 많이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움과 억장이 무너지는 국민이 어디 필자뿐이겠는가. 울지 않은 국민이 어디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도 사고현장을 두 번이나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제 관계 부처는 유가족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국민도 이런 참사가 인재로 기록되는 일이 없도록 국가안전망 개혁에 동참해야 한다. 옷깃을 가다듬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