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기자 반성문 (사진출처: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홈페이지)

세월호 취재한 55명의 막내기자 눈으로 본 KBS
편향된 편집, 유족들 불신 초래해 취재 거부당해

[천지일보=최유라 기자] KBS의 막내기자들이 ‘세월호’ 보도와 관련해 반성문을 게재했다. KBS는 국가의 재난이 닥쳤을 때 주관방송으로서의 보도할 책임을 져야하지만 세월호를 취재한 기자들의 모습과 편집된 보도 등이 현실과 요원한 방송국이라는 내용이 실렸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에 따르면, 지난 7일 오전 KBS 38‧39‧40기 취재‧촬영기자 55명을 대표로 10명의 기자가 쓴 ‘KBS를 어떻게 믿어요?’라는 제목의 글이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10건의 반성문으로 작성된 이 글은 KBS 기사 작성용 보도정보시스템에 먼저 게재됐다. 보도정보시스템 게시판은 기자들의 의견과 주장을 게재할 수 있는 공간이다.

◆“토론회 제안한다”

‘세월호’ 취재를 한 KBS 막내기자들은 반성문을 통해 ▲취재기자 운용 시스템의 문제 ▲정권을 감시‧비판하지 않고 편파적으로 내보내는 편집 ▲타언론사 간 경쟁으로 치우친 기사작성 압박 등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뱉었다.

10건의 반성문 말미에는 모두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성해야 된다”며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드러냈다.

◆“우린 기레기였다” “KBS잠바 입기 두려웠다”

반성문에서 한 기자는 “우리는 ‘현장’에 있었지만 ‘현장’을 취재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울부짖을 때 우리는 냉철한 저널리스트 흉내만 내며 외면했다”고 자책했다.

KBS 기자들은 현장에 투입돼도 질 좋은 기사를 만들어내기 어려웠다는 고충도 쏟아냈다. 유족들이 ‘편향된 편집보도’를 접함에 따라 KBS를 불신하게 됐다는 것. 유족들의 불신의 화살은 현장에 나간 기자들에게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자는 “대통령의 첫 진도방문 리포트는 진도체육관에서 가족들의 목소리를 모두 없앴다. 거친 목소리의 채널투는 사라지고 오로지 대통령의 목소리, 박수 받는 모습들만 나갔다”며 왜곡된 편집이 있었음을 밝혔다.

또 “대통령의 안산분향소 조문은 연출된 드라마였다. 조문객을 실종자의 할머니인 것처럼 편집을 해서 시청자들이 객관적 사실을 왜곡되게 받아들이게 했다. 타 매체가 그 실종자 할머니처럼 보인 그 분이 유족이 아니라고 보도했지만 우리 뉴스에서 그 소식을 보긴 어려웠다”며 정확한 사실이 가려졌다고 말했다.

실종자 유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싣지 않는 KBS에 대한 불만을 취재 불응으로 표출했다. KBS 현장기자들은 ‘기레기(기자+쓰레기)’ ‘개병신(KBS 은어 약칭)’ 등의 욕을 들어야 했다.

기자들은 “기레기 중에 기레기였다”고 인정했고, “팽목항에선 KBS 로고가 박힌 잠바를 입는 것조차 두려웠다”고 말했으며 아예 “변을 당한 기자도 있었다”는 증언을 담았다. 또 한 기자는 “매 맞는 것이 두려워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기사를 썼다”는 뼈아픈 고백도 실었다.

◆“권력으로부터 편집권 독립해야”

이에 한 기자는 “처음으로 말씀드린다. 부디 권력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이루세요. 청와대만 대변하려거든, 능력껏 청와대 대변인 자리 얻어서 나가서 하세요”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표출했다. KBS만이 가지고 있는 우수하고 풍부한 인력, 장비 등의 자원들을 국민들로부터 받았음에도 가장 적합한 목적에 쓰지 않았다는 문제도 지적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에 따르면,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임창건 보도본부장은 “후배들이 현장에서 문제제기 안하고 뒤통수치듯 이런 글을 쓰는 걸 이해 못 하겠다”고 반박했다. 또 김시곤 보도국장은 “후배들의 이런 글은 대자보 정치다. 부장이 후배들과 대화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그럼 KBS가 실종자 가족 이야기를 다 들어줘야 하나?”라고 되물었다.

이날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길환영 사장, 임창건 보도본부장, 김시곤 보도국장을 향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주장했다.

한편 막내기자들이 쓴 반성문이 일방적으로 삭제됐다는 주장이 일자, 8일 KBS 보도본부는 “삭제하지 않았다. 현재 KBS 보도본부 보도정보시스템 게시판’에 반성문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KBS 기자 반성문이 게재되자 네티즌들은 “KBS 기자 반성문 상당히 고무적이다” “KBS 기자 반성문, KBS 수신료 거부 운동해야겠다” “KBS 기자 반성문, 늙은 기자들 반성하라” “세월호 실종자 유가족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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