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태평천국은 천부(天父)를 정점으로 4형제라는 가족구조로 형성되었다. 큰형은 예수, 둘째는 홍수전(洪秀全), 넷째는 양수청(楊秀淸), 셋째는 이미 죽은 풍운산(馮雲山)이었다. 이 구조는 양수청의 제안을 홍수전이 받아들이면서 정식으로 인정되었다. 양수청은 예수와 다름이 없었으며, 그의 말은 하느님을 대신한다는 권위를 획득했다. 위창휘(韋昌輝)가 반양수청 세력을 결집하기 시작했다. 광부출신에서 출중한 전략가로 변신한 진일강(秦日綱)도 양수청의 가마를 메고 궁정의 계단을 오르는 치욕을 감수했다. 위창휘는 이러한 역학관계를 이용해 양수청의 반대세력을 결집했다. 외부에 있던 석달개(石達開)는 위창휘와 진일강에 비해 양수청의 견제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도 양수청의 지나친 권력전횡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1853년 3월 2일, 양수청은 천부의 입을 빌려 태평천국의 고위 관료 3명이 요괴를 제거하고 최후의 승리를 거둘 때까지 섹스를 금지한 금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처벌했다. 침실의 비밀까지 아는 신으로 부상한 양수청은 유가의 덕목을 끌어들여 홍수전이 확립한 교리까지 무너뜨리려고 했다. 남경의 주민들은 태평천국이 점차 부패해가는 것을 보고 전통적 가치로 회귀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양수청에게는 유교의 전통적 가치관으로 지지세력의 외연을 넓힐 필요가 있었지만, 증국번(曾國藩)을 비롯한 향신(鄕紳) 출신 지도자들이 본격적으로 태평천국을 진압하기 위한 세력을 형성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태평천국을 민중과 유리시키기 위해 중국의 전통적 가치를 등진 반민족주의자로 규정했다. 양수청은 그들과의 타협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양수청은 홍수전이 체계화한 교리를 평가절하하기 위해 성경은 문학적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며 완전하지도 않으므로 세련되고 완전할 때까지 수정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홍수전과 그의 신도들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성경은 이제 양수청의 입을 통해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수정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서도 양수청의 군사작전은 성공적이었다. 1856년 6월, 양수청은 천경의 동쪽에서 청군 기습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천부의 대리인이라는 권위를 증명한 양수청은 자기도 ‘만세(晩歲)’라는 칭호를 듣고 싶다고 홍수전을 압박했다. 홍수전으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석달개, 진일강, 위창휘에게 양수청의 역모를 제압하라고 명했다. 굴욕을 참으며 기다리던 위창휘는 진일강과 함께 천경으로 진입하여 석달개를 기다리지 않고 양수청을 죽이고 그의 목을 효수했다. 양수청의 심복들까지 모두 2만 명이 피살되었다. 태평천국이 내리막길로 치닫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뒤늦게 도착한 석달개가 항의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위창휘는 석달개까지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위기를 느낀 석달개가 성을 빠져나가자 위창휘와 진일강은 그의 가족과 시종들을 모두 살해했다. 부대로 돌아온 석달개는 삼합회를 포한한 여러 세력들을 결합하여 10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확보했다. 양자강을 따라 하류로 이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홍수전은 그동안의 무력함이 이상할 정도로 신속하게 친위대를 소집하여 위창휘를 살해하고 그의 수급을 석달개에게 보냈다. 진일강도 피살되었다.

진정한 승자는 누구였을까? 단기적으로는 굴욕을 참다가 복수에 성공한 위창휘일 것이다. 어부지리를 얻은 석달개도 승리자였다. 그러나 가족까지 모두 잃고 고독하게 통치자 노릇을 했던 그는 홍수전의 견제를 이기지 못해 1857년 여름, 스스로 천경을 떠나고 말았다. 혼란의 와중에서 모든 정적들을 제거한 홍수전도 작은 승리를 얻었다. 그러나 승리를 얻은 그는 손과 발을 모두 잘라내고 남은 불구자와 같은 꼴이었다. 농업국가인 중국에서는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인구의 구성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들은 거대한 바다의 풍랑을 일으켜 조각배처럼 흔들리는 통치자들을 전복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농민기의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새로운 정치체제를 구축하지 못하고 그들이 타도했던 전제정권을 답습했다. 원대한 계획과 참신한 정치적 이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의 싸움 덕분에 가장 큰 대합을 얻은 사람은 증국번이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