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노중련은 위나라의 사신 신원연에게 진나라 왕을 움직여서 위나라 왕을 솥에 삶아 자반으로 만들겠다고 하자 신원연이 발칵 화를 내었다. 노중련은 계속 말을 이었다.

“진나라는 만승지국(1만 채의 병거를 낼 힘이 있는 나라)이고 위나라 역시 그에 못하지 않은 나라가 아니오? 서로가 대등한 나라인데 단지 진나라가 한 번 싸움에서 승리를 했다하여 위나라가 무릎을 꿇고 진나라를 황제로 받들어서야 지난날의 위나라 대통을 이은 귀국의 중신들이란 소국인 추나라, 노나라의 하급 관리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겠소. 게다가 진나라 왕이 제후들의 저항도 받지 않고 황제 위에 오르는 날에는 제후들의 중신들을 멋대로 갈아치울 게 아니겠소? 더구나 공주들을 비롯해서 여자 첩자들을 여러 나라 제후들의 아내로 삼게 하고 위나라에도 그런 첩자를 보낼 것 아니겠소. 그렇게 되는 날이면 위왕은 편안하게 국정을 살피지 못할 것이오. 또한 당신도 지금의 지위가 안전하다고 어찌 보장을 받겠소?”

노중련의 말을 듣고 난 신원연을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머리를 수그리고 공손히 말했다.

“과연 선생께서는 천하의 어지신 분입니다. 저는 서둘러 이곳을 떠나 진나라 왕을 황제라고 받드는 말은 두 번 다시 입 밖에 내지 않겠습니다.”

이 소문은 곧 진나라 군영에 전해졌다. 조나라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진나라 장군 백기는 한단을 포위하고 있던 군대를 50리나 후퇴시켰다. 때맞추어 위나라의 공자 무기(신릉군)가 왕명을 속이고 장군 진비의 군사 지휘권을 빼앗아 진나라군을 공격했다. 그 여파로 진나라 백기는 한단의 포위를 풀고 군사를 돌려 물러갔다.

드디어 조나라는 위기를 벗어났다. 평원군은 왕에게 아뢰어 노중련에게 영지를 주려고 했다. 노중련은 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자를 몇 번이나 보냈으나 끝끝내 듣지 않았다. 평원군은 노중련을 위해 성대한 주연을 베풀어 그의 공로를 치하하기로 했다. 연호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평원군은 노중련 앞에 나아가 그의 장수를 축복하고 천금을 내밀었다. 노중련은 웃으면서 그마저도 거절했다.

“천하의 어진 사람은 남을 위해 근심을 덜어 주며 괴로움에서 구해 주고 난리를 평정하되 결코 보수는 받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받을 수 없소이다.”

노중련은 평원군과 헤어진 뒤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20년쯤 지나서 연나라 장군이 제나라 요성을 공격해서 함락시킨 사건이 있었다. 그 뒤 요성 사람이 그 장군에 관한 것을 연왕에게 모함을 했다. 그 때문에 연나라 장군은 벌을 받을 것을 겁내서 연나라에 귀국하지 않고 요성에 머물고 있었다.

제나라는 장군 전단을 보내서 빼앗긴 요성을 탈환하려고 애썼으나 1년 동안 수많은 희생자만 내었을 뿐 좀처럼 요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 무렵 제나라 장군 전단 앞에 나타난 노중련은 요성 안에 있는 연나라 장군에게 쓴 서신을 화살에 꿰어 쏘아 보냈다.

“지혜로운 사람은 시대의 흐름을 거역해서 불리한 처지에 빠지지 않으며 용감한 사람은 죽음을 겁내서 명예를 잃지 않으며 충신은 몸을 아껴 주군을 잊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 장군은 일시적인 잘못 판단으로 신하의 덕을 입은 연나라 왕을 버렸습니다. 결국 장군은 요성을 잃게 되고 무용을 제나라에 떨치는 데도 실패하고 공명을 얻어 이름을 후세에 남기지도 못하리라. 이것이야말로 충이 아니며 용이 아니오. 이러한 일을 저지른 자는 세상의 군주들이 절대로 신하로 삼지 않을 것이며 세객들의 입에 오를 자격마저 없소. 지금 장군은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결단의 시기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부디 잘 생각하여 속인과 같은 길을 밟지 말기를 바라오.”

연나라 장군은 노중련의 서신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사흘 동안 골똘히 생각했다. 연나라에 돌아가려고 생각도 했으나 연왕과의 사이가 너무나 멀어졌고 죽음을 당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제나라에 항복한다면 굴욕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염려되었다. 그는 요성에 쳐들어와 이미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는 절망에 사로잡혀 신음하고 있었다.

“남에게 잡혀 죽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좋겠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바로 자살하고 말았다. 그러자 요성 안의 연나라 군사들은 큰 혼란에 빠져 버렸다. 전단은 그 틈을 이용하여 곧장 요성을 되찾았다. 제나라로 개선한 전단은 재빨리 제나라 왕에게 노중련의 공적을 말하고 그에게 작위를 내릴 것을 청했다. 노중련은 어느 바닷가의 마을에 은신하여 이렇게 말했다.
“부귀를 누리기 위해 남에게 어색하게 굴기보다는 오히려 평생 동안 가난하게 살면서 뜻대로 사는 것을 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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