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차기대권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6월 지방선거가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다소 이르긴 하지만 서울시장 등 주요 단체장에 누가 당선되느냐가 주목된다. 결과에 따라 아직 안갯속인 2017대선판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선에 성공하면 문재인 안철수 의원과 함께 야권 3’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새누리당은 서울시장 후보군의 정몽준 의원, 김황식 전 국무총리, 이혜훈 최고위원 중 누가 승리의 깃발을 꽂더라도 당선자는 일약 여권 내 대권주자로 부상할 것 같다. 현재 여권의 잠재적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김무성 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 홍준표 경남지사 등이 바짝 긴장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안철수 의원이 지휘하는 새정치연합도 민주당이 괄목상대할 만한 득표율을 올린다면 이번 선거가 야권발 정계개편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다.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안희정 충남지사도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선거가 마치 대선의 예선전인 듯한 묘한 느낌마저 든다. 그만큼 아직 뚜렷한 유력주자가 없기 때문일까.

경제난은 말할 것도 없고 남북관계를 포함해 한반도 주변 풍향계가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다. 크게 신나는 일도 없고 뚜렷이 희망적인 일도 없다. 때문에 앞으로 국운을 일으킬 인물의 출현을 학수고대해보는 것이 선거의 계절을 맞은 민초들의 소박한 바람일 것이다. ‘작지만 멀리 나는 넓적부리도요’. 박원순 서울시장의 명함이 특이하다. 명함 오른쪽 윗부분에 쬐그만 새 한 마리 그림과 함께 이 글귀가 자그마하게 적혀 있다. 넓적부리도요는 시베리아나 알라스카에서 번식하다 추워지면 남쪽으로 내려와 겨울을 나는 철새로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위기 새로 지정돼 보호하고 있다. 박 시장이 이 같은 명함을 갖고 다니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실 서울시장이 되기 전 걸어온 길은 그가 애써 선택한 형극의 길이었다. 우리나라가 어떤 곳인가. 쉽게 말해 사법시험이라는 한 차례 페이퍼 테스팅을 통과하면 개천에서 용 났다며 평생을 우려먹는다는(?) 사회 아닌가. 도둑 잡는 판검사가 무어 대단하다고 결혼 중매시장에서부터 금값인가. 어쨌건 현직 판검사에게는 권력과 프리미엄이 따라붙는다. 자리를 이동해도 두둑한 전별금이 날아오고 현직을 그만두면 전관예우가 있어 변호사로 단시간에 거금을 만지는 경우도 있다. 따뜻한 양지(陽地)의 삶이 평생 보장되는 법조인 천국이라는 우리 사회. 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쬐그만 도요새 같은 재야인사로 살아왔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때는 시국사건 변호를 맡아 깨어 있는 양심을 고수하는 등 남달리 ()’의 길을 걸어왔다. 그의 아름다운 재단도 개척자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나 협찬인생이라며 눈을 흘기는 이들도 있었고 정치적 처신에 영악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길지 않은 서울시장 재임 기간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특별히 잘 한 것을 꼭 집어 말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특별히 못한 것도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택시 타기가 여의치 않은 늦은 밤 귀가길 젊은 여성 등을 위해 서울시가 도입한 심야버스에 대해서는 뜨거운 박수가 쏟아지기도 했다. 나름대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해온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다른 후보군이 긴장해야 할 듯하다.

새누리당 경선이 빅카드의 격돌이어서 2014지방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여성유권자들에게 강점을 지닌 이혜훈 최고위원이 이미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출사표를 던졌다. 7선 경력의 정몽준 의원과 20%라는 호남 출신 유권자를 등에 업고 있는 김황식 전 총리도 도전장을 내밀기 일보직전이다. 유력 후보가 많을수록 선택의 폭이 넓어져 유권자는 즐겁다.

우선 시장 당선 때 강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박계의 견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 의원은 큰 재산가라는 점이 강점이요, 동시에 약점이다. 정 의원은 보유 주식 가치만 2조 원에 가깝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현대(現代) 그룹 신화를 만든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아들이다. 최근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을 만나 한 수()’ 배우고 왔다. 블룸버그가 그랬듯 서울시민이나 시정을 위해 사재(私財) 일부를 헌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엔 달동네도 많고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는 청소년도 많다. 어렵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서민들에게, 마음 놓고 학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청소년들을 위해 예컨대 수천억 원을 내놓는다고 하자. 인물론(人物論)에 앞서 도시민들에겐 엄청난 희소식이요, 화제거리가 된다. 마치 고려 건국 전 왕건 작제건 부자(父子)가 그들의 곳간을 개방해 해상세력과 주민들을 배불리 먹였듯. 과연 그런 배포와 희생정신이 있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아마 야권에서는 돈권력론을 내세우거나 서민부자’, ‘진보보수’, ‘잡초화초등의 구도로 판을 짜 공격하려 들 것이다. 이번 선거는 노인 유권자 비중이 큰 편이다. 또한 최근 박근혜정부 국정지지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반사적 이익을 누릴 수도 있어 만만찮은 폭발성과 휘발성이 잠재된 후보이다. 그에겐 TV토론이 위기이자 기회. 시장직 수행적합성과 뜨거운 진정성을 함께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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