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대하드라마 ‘정도전’

달이 차면 기울어지는 법. 고려도 그랬다. 원나라에 절절 매던 고려가 더 이상 힘을 내지 못해 난세 중 난세였다. 그때 정도전이 있었다. 민심이 돌아선 고려에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결심한 그였다.

▲ KBS1 대하드라마 ‘정도전’ (사진제공: KBS)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감명 깊은 대사가 나온다. ‘Beautiful things don't ask for attention(아름다움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 주옥같은 대사는 KBS1 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주인공인 삼봉 정도전(조재현 분)에게 어울리는 말이지 싶다. 그는 오직 바라는 것은 민심을 알아주는 나라와 정치일 뿐 그 외는 소원하지 않는다. 오로지 목표만을 이루기 위해 상대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돌직구를 날리는 정도전. 그래서 당대 최고 권문세력 이인임(박영규 분)과 대립한다.

◆민심이 곧 천심

“임금은 존귀한 존재지만 그보다 더 존귀한 것은 천하민심이다. 천하 민심을 얻지 못하는 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도전 ‘조선경국전 서문’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새 왕조를 설계한 인물’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는 격동의 시기, 그 중심에 그가 있었다. 그러나 훗날 이방원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해, 그가 꿈 꿨던 성리학적 이상세계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던 비운의 인물이다. 그는 선비다운 강직한 기개가 체화된 사람이다.

드라마 ‘정도전’은 공민왕이 시해되기 직전인 1374년 가을부터 정도전이 죽음을 맞는 1398년까지 24년간의 이야기다. 내용상 크게 3부로 나뉘는데 제1부는 ‘천명(天命)’으로 공민 왕 사후 정도전이 이인임의 눈 밖으로 나게 되고 유배와 유랑살이를 전전하면서 혁명을 결심하고 이성계와 뜻을 함께하는 내용이다. 제2부 ‘역류(逆流)’에는 정도전이 이성계와 급진파를 만들어 숱한 장애를 헤치고 조선을 건국하고 제3부 ‘순교(殉敎)’에서 조선왕조 건국 이후 나라를 정비하는 그가 요동정벌을 눈앞에 두고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렇다면 실제 정도전의 행적은 어떠할까.

‘정도전’ 하면 토지개혁이 떠오른다. 고려 말엔 ‘부익부 빈익빈’이었다. 한마디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권문 세족의 토지는 산과 강을 경계로 할 정도로 넓었다. 반면 백 성은 땅을 가질 수 없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산층이 턱없이 없는 나라 경제구조는 위험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도전은 모든 논밭을 몰수해 인구비례로 백성에게 나눠주자고 목청껏 외쳤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반발로 농민에게 경작권을 주는 수조권(收租權)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정도전에게 아쉬움이 남는 토지개혁이었으나, 백성은 자신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정도전을 응원하고 지지했다. 이는 곧 새 왕조를 여는 기반이 됐다.

그는 백성의 목소리가 곧, 하늘의 뜻이라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도 백성의 원성을 듣는 시기는 국운이 쇠할 때가 아니던가. 이러한 이치를 깨달은 정도전은 정치 개혁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정도전은 재상 정치를 바랐다. 즉 왕이 아닌, 재상이 통치하는 나라다. 재상은 어떠한 자리인가. 임금을 돕고 모든 관원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자리가 아닌가. 덕장(德長)과 폭군 모두 재상의 정신과 역량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조선경국전〉에 “왕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 한결같지 않으니, 재상은 왕의 좋은 점은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것은 막아서 왕으로 하여금 대중의 경지에 들게 해야 한다”라며 재상의 역할을 명시했다.

 

▲ 왼쪽부터 정도전과 정몽주. 이 둘은 이색에게 같이 수학한 친구로 우왕의 친원 정책에 반대해 신진사대부 전부가 귀양길에 올랐다. 정몽주는 1381년 일본 왜구 침략 근절을 위해 일본으로 떠났고, 정도전은 그로부터 3~4년 후에 귀양에서 풀려 이성계를 찾아갔다.

◆이성계를 만나다

우왕 10년(1384) 정도전은 이성계를 찾았다. 관직에서 물러난 정도전이 이성계의 군대를 본 후 자신의 꿈을 실현해줄 이가 바로 이성계임을 확신했다. 당시 이성계는 여진족 호발 도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함경도 동북면도지휘사로 있었다.

위화도회군으로 이성계의 세력이 커져만 갔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 때 조정에는 정몽주를 중심으로 한 온건세력이, 그리고 정도전과 같은 급진적 개혁세력이 있었다. 급진적 개혁세력의 중심엔 이성계가 있었다. 1392년 정몽주가 이방원의 세력에 사살당하면서 고려의 국운은 끝이 났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 조선이 들어섰다.
정도전은 개국공신이었다. 나라가 세워진 후에도 여러 사업을 펼쳐 나라의 기반을 탄탄히 했다.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복궁 및 도성 자리를 정했고, 수도 건설 공사의 총책임자로 그 역할을 다했다. 또한 성리학으로 이상세계를 만들고자 했던 염원대로 경복궁을 비롯한 성문과, 각종 상징물에 유교의 덕목이 담긴 이름을 붙였다.

그는 조선의 최고법전인 〈경국대전〉의 전신 〈조선경국전〉을 지어 태조에게 올렸다. 태평성대 요순시대를 꿈꾸며 임금과 신하가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는 왕도정치를 표방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김지윤 기자 jade@newsc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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